인생은 흐르지만, 어떤 기억은 남는다.
이 시집은 바로 그 기억이 머무는 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자이자 기업가였던 김경수 시인은, 치열했던 삶의 한복판에서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감정과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시의 언어로 정리해 냈다. 『기억이 머문 자리』는 그가 20여 년 전 써두었던 시들을 다시 꺼내고, 다듬고, 묶은 끝에 나온 첫 시집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지켜낸 말들의 기록이며, 한 사람의 내면에 조용히 쌓인 온도와 그림자를 닮은 고백이다.
김경수의 시는 격정이나 기교보다는 조용한 사유와 정직한 이미지의 시학을 보여준다. 봄비에 젖은 그리움, 가을 들녘의 상실, 눈 덮인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그의 시는 자연과 계절을 매개로, 독자 안의 오래된 감정 하나를 천천히 흔든다.
특히 시인은 ‘성취’보다는 ‘내려놓음’, ‘완성’보다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감당할 수 없는 꿈은 어느 순간부터 욕심이 된다.”는 고백은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기억이 머문 자리』는 독자에게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못했던 것을 꺼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남기는 책이다. 누구나의 마음속 어딘가, 오랫동안 잊힌 감정 하나쯤 머물러 있는 자리-그곳을 이 시집은 조용히 스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따뜻한 여백 하나를 남긴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나를 일으킨 마음,
아직 닿지 못한 사람에게 띄우는 조용한 편지,
혹은 혼자 견뎌낸 날들을 기억하는 방식.
이 시집은 당신의 하루 한가운데, 그렇게 한 줄기 빛처럼 조용히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