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엿보기]
다니엘 키스트(Daniel Kister)는 부조리극과 무당굿을 비교하면서, 양자가 모두,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농락당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자 하는 희구 속에 공통적으로 뿌리박고 있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죽음 저 너머까지 투시하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로가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이 부조리극이나 무당굿이라는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신내림’을 집행하는 무녀의 중얼거림과 유사하다. 나무와 꽃, 새 등의 자연물과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찾아내는 예언자적 감수성은 최정란 시인이 갖고 있는 기질적 특성이다. 이 예언자적 감수성은 그의 시가 언어로써 신학적 상상력을 구축하는 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물은 나무를 기르고, 나무는 불꽃을 물고 있는데, 그중 풍부한 물방울의 양육 의지는 젊은 엄마의 본질적 속성이다. 여성적인 풍부한 양육의 원형은 달빛을 통해 대유된다. 달빛에는 차고 기우는 나름의 길이 있다. 전래동화 「우렁각시」에서 나오는 바, 물속의 모든 패류와 갑각류들은 달빛을 닮아 몸이 가득 차오르거나 홀쭉하게 비워진다. 따라서 “달의 수위가 낮아진다”(「과수원이 있던 자리」)는 표현은 내 몸 안에 키운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 공허를 견디는 중이라는 말과 같다. 지상을 비추는 달빛은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단 한 번이라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꽃그늘을 넘나들며 잉잉대던 벌들 오지 않는다
달빛 그윽하게 깊어지던 과수원, 달빛 고이지 않는다
누수가 진행된 틈으로 달의 수위가 낮아진다
텅 빈 분화구 붉은 흙먼지가 자옥하게 눈을 찌른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바닥이 배를 뒤집어 보인다
몸에도 자세히 보면 달빛 새어나간 틈이 무수히 많다
철모르는 사과꽃들 피어나던 마음 한 채 들어낸다
- 「과수원이 있던 자리」 전문
시적 화자는 어느덧 불혹을 지나면서 “몸에도 자세히 보면 달빛 새어나간 틈이 무수히 많다”고 한다. 개체의 몸인 한 여성은 자연물인 달빛처럼 무한히 순환의 연쇄를 이루어낼 수 없다. 유한한 삶이며, 유한한 삶에 대한 인식은 고통을 수반한다. “텅 빈 분화구 붉은 흙먼지가 자옥하게 눈을 찌”르는데, 더 이상 달빛은 고이지 않는다. 내적으로 가득 차올라 충만한 상태가 양육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누수가 진행되면서 흙먼지가 자옥한 텅 빈 분화구는 물고기 한 마리 키울 수 없는 불모의 상징이 된다. 텅 빈 분화구 바닥이 물고기처럼 배를 뒤집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식을 실상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 문제이다. 마음이 먼저 사막의 길을 가고 있다. “철모르는 사과꽃들 피어나던 마음 한 채 들어낸다”에서 그동안 자주 꽃을 피운 것은 철모르는 마음이 시킨 일이니, 그 마음 한 채를 들어내어 또다시 누수의 반복을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무가 철을 놓쳐 꽃을 피운다면, 스스로를 상하게 한다. 이를 제어하려는 의지, 이미 시간이 지났다는 확인, 이러한 사유는 단단한 목질처럼 깡말라 있다. 나무에게는 성장기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을 하나씩 벗겨내어 생의 물무늬를 확인하는 작업이 대패질이다. 대팻집나무는 자라나서 몸에 칼을 품고 자신의 누추한 속살을 벗겨내는 일을 한다. 이는 뫼비우스 띠처럼 내가 나를 더듬어 내력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 염창권(시인)
[시인의 산문]
언어의 장애가 언어의 위로라는 언어의 역설을 생각해 본다. 말은 상처를 주지만 말 없는 말은 위로를 준다. 나아가 언어의 결핍이 수화라는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킨다. 말은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침묵이야말로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다. 말 없는 존재들이 손짓으로 사랑, 배려, 위로를 전한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온기와 위로가 피어날 수 있다. 나는 단지 삶의 한 장면 속에서, 조용히, 손의 언어로, 따뜻한 느낌표 하나를 건넬 뿐이다. 홍안의 쑥스러움이 먼저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