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예뻐 보였을 때,
노을이 노을로 보였을 때,
비로소 여행이 여행이 되었다
‘비싼 돈 들여 사진 몇 장 남기는 게 다가 아닐까?’ 해외여행에 회의적이었던 당시 스물네 살의 저자에게 박서우가 유럽 일주 제안을 했다. 해외여행이 전무했던 저자는 망설임도 컸지만, 대학 졸업 후 뚜렷한 목표 없이 지내던 그에게 이 여행은 제법 멋진 환기이자 이력이 될 것 같았다. "유럽 여행 비용"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생기자, 그의 삶에 활력이 생겼다. 칼국수 집 서빙, 스크린골프장 카운터, 이자카야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6개월간 여행 경비를 모았다. 하루하루는 고단했지만, 그 고단함이 오히려 청춘 같아 행복했다고 말한다.
‘유럽 여행 비용’이라는 목표는 여느 때보다 열정적인 루틴을 만들어 주었다. 평일에는 엄마 가게에서 오전 11시 50분부터 우르르 들어오는 회사원들에게 칼국수를 서빙하고, 다시 헐레벌떡 뛰어가 여섯 명에게 여섯 개의 카드를 받아 로봇처럼 카드를 긁으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 월급날이 다가올 때는 이번 달에 번 돈과 저축할 수 있는 돈을 적었다. 주말에는 동네 이자카야에서 모듬 사시미를 날랐다.
“이거는 광어, 이거는 참돔, 이거는 연어고요, 흰 살 생선부터 드시고 간장은 적혀 있는 생선에 맞게 찍어 드시면 됩니다.”
상냥하지만 영혼 없는 멘트를 끝내고 술 냉장고 앞으로 돌아와 유리에 엉덩이를 살짝 기댔다. 손님들의 머리와 머리 사이에 초점을 맞추고 몇 달 뒤의 유럽 여행을 그렸다. 내 인생에 이렇게 열정적이고 청춘 같은 나날들이 또 있을까 행복했다.
_본문 중에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처음 떠난 5주의 유럽 여행은 서툴고 어설펐지만, 런던에서의 낯선 공항 풍경, 프라하 상공에서 뛰어내린 스카이다이빙, 베네치아의 계단에 앉아 본 노을 같은 순간들이 그의 마음을 단단히 흔들었다. “노을이 예뻐 보였을 때, 노을이 노을로 보였을 때, 비로소 여행이 여행이 되었다”라는 고백처럼, 여행은 그에게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낯선 곳을 걸어야만 새롭게 알게 되는 내가 있다
그래서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또 한 번 나선다
겁나기도 하지만, 또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책에는 예측할 수 없어 더 재밌는 여행 에피소드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셋이 떠난 여행에서는 사소한 입맛 차이 하나에도 마치 2대 1로 대치하는 기분에 빠져 긴장감이 흐르는가 하면, 상상했던 낭만과는 달리 박서우의 엉덩이만 바라보며 수십 번의 고비 끝에 올랐던 몽골의 고비(Говь), 무너지는 멘탈을 부여잡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을 몇 번이나 맞닥뜨린 가족 여행 등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의 진짜 풍경들이 유머와 진솔함으로 펼쳐진다.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더운 숨을 몇 번이고 내뱉고, 모래 먼지가 섞인 땀을 흘리고, 축축 처지는 근육을 달래서 꼭대기에 두 발을 꽂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낸 사람만이 마시고 웃을 수 있는 허무한 오아시스가 그 위에 있다.
_본문 중에서
여행이 꼭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투르고 예상과 다른 순간들에서도 충분한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 경쾌하고 진솔한 여행기 속 문장들이 말해준다.
이 책은 화려하거나 완벽한 여행 이야기와는 다른, 진짜 여행자의 목소리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완벽하지 않은 여행,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저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