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에 있는 도시 쑤이펀허에서 기차를 타면 러시아 국경 마을 포그라니치니까지 26킬로이다. 박영희 시인은 이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지냈다. 혼자 만주를 떠돌면서 그의 영혼은 더 아득하면서도 더 절실한 ‘우리’의 생명성에 젖지 않았을까. 이 시에 담긴 정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득하고 깊은 우물이 느껴진다. 극동에 피어있는 진달래꽃은 망명자들의 발자국만큼이나 우리를 울컥하게 한다. 두 량의 기차가 한가로운 국경에서 그는 망명자들을 기억한다. 충청도에서 태어난 조선의 작가였지만 소련에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숙청당하고 만 포석 조명희의 뜨거운 삶이 사무친다. 누군가를, 어딘가를 돌아본다는 것, 울퉁불퉁한 역사를 추적한다는 것은 세심한, 쓸쓸하면서도 뜨거운 애정이 필요하다. 하여 만주의 속살 같은 이야기들이 리좀처럼 시집 곳곳에 맺혀 있다. 뿌리를 따라다니는 동안 시인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사람들을 발견한다. 만주의 역사를 흐르다보면 무수한 디아스포라들이 알몸으로 서 있다. 모퉁이마다 조선인들의 꿈이 맺혀 있다. 조난당한 모국어와 함께 말이다. 차가울수록 서러울수록 그 맨발과 맨손들이 붙들어낸 시간과 공간은 바위산처럼 강인하다. 눈물겨운 디아스포라들이 어떤 땐 잔잔히 흐르고 어떤 땐 격랑처럼 솟구친다. 나그네 의식과 연변 사투리 앞에서 시인 자신도 그들 일부임을 깨닫는다. 그는 조선말, 그 말씨와 말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말씨 속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삶의 현장, 살아있음을 살아있음으로 증명하는 민중을 확인하는 것이다. (…) 이 시집은 역사의 갱도에서 생명을 캐어내는 시인의 아리랑이다. 그 아리랑의 현실은 뜨거운 과거와 미래 그 자체이다. 그는 배 위에서, 기차 칸에서, 길 위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생명의 무늬, 그 살아낸 자리를 읽고 듣고 받아쓰고 있다. 인간이 아름답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그는 만주에서 그것을 보았던 걸까. 아련한 꽃물들처럼 삶에 번져있는 용기들, 슬픔의 무늬가 촉촉한 인내들 말이다. 그 슬픔이 기실 생명의 본성이 아닐까. 그 아리랑을 따라 시인은 탈북인들을 수없이 만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났다. 만주에 흩어진 조선족을 통해 세계 속의 이방인, 식민지 속의 이방인, 분단 속의 이방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다. 그 쓸쓸한 받아쓰기의 최선은 시였으리라.
- 김수우(시인) 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