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슴을 툭 치고 가는 물고기, 물고기가 던지는 질문들
- 박미라 시집 『죽음의 쓸모』
박미라 시인이 신작 시집 『죽음의 쓸모』를 펴냈다. 달아실시선 96번으로 나왔다.
박미라 시인의 시(의 특징)를 한마디로 축약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 축약하자면 “정밀한 묘사에서 힘을 얻는 서사, 깊은 사유를 품은 어둑한 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이번 신작 시집 『죽음의 쓸모』의 등뼈를 이룬다.
노련한 시인은 시를 물고기로 만들 줄 안다. 그가 만들어낸 물고기는 유유히 물속을 유영하다가 독자의 가슴을 툭 치고는 쏜살같이 지나쳐 간다. 독자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다. ‘방금 내 가슴을 스친 이것은 뭐지?’ 박미라의 시는 그렇게, 어느 순간 불쑥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한 예로 「사소한 기록」을 보자. 이 시에서 박미라는 집을 고래라는 상징으로 불러내어, 가족사와 죽음의 기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고래가 있었다
캄캄하고 뜨겁고 기다란 몸을 가진 고래였다
우리 집 고래는 불을 잘 먹는단다 할머니는
고래 속으로 고래 속으로 불을 밀어넣었는데
고래가, 욕심껏 삼킨 불을 어쩌지 못해
꾸역꾸역 게워낼 때면 내 등짝이 후끈거렸다
할머니가 죽고, 동생이 죽고, 뒤란 감나무가 죽고,
숨죽여 울다가 차디차게 식어버린 고래
더는 불길 들이지 않는 저녁을 견디던 고래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내가, 고래 없는 세상으로 숨어든 다음
고래는 바다로 갔다던데
더는 불길 삼킬 고래도 없는 옛집을 떠난 후
불꽃 같은 분수를 짊어지고 떠돌더라는
고래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고래가 없이도 등짝을 데우는 방법이 우거진 세상에서
내 등짝은 마른장마에도 눅눅해서
가끔 바다에 들려 고래 소식을 수소문해보는데
바다가 지피는 불은 참, 뜨겁기도 하더군
얼마나 다행인지
- 「사소한 기록」 전문
여기서 고래는 단순히 옛집의 온돌 구조물이 아니다. 불을 삼키고 게워내는 생명체로 형상화된 고래는 집의 기억이자 가족 공동체의 은유다.
“할머니가 죽고, 동생이 죽고, 뒤란 감나무가 죽고”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가족사의 비극은 고래의 소멸과 겹쳐진다. 그러나 고래는 바다로 가서 다시 태어난다. 죽음을 통한 소멸이 새로운 환생의 염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런 죽음과 환생은 시집 제목과 같은 「죽음의 쓸모」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어나무 한 그루 고요하다
제가 제 죽음을 믿을 수 없거나
끝내지 못한 문장이 있는 시인의 후생인 것만 같은
저 죽음의 준비는 오랜 시간이 걸린 듯
살점을 말끔히 저며내고 큰 키를 접어 그늘을 거두고
먼 인연의 바람에게 물기를 부탁했을 테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서어나무의 진행형 환생 과정은 아닐지
육탈의 갯골을 타고 천만 갈래의 와디가 지나간 자리를 곰곰 살펴
바닥을 고르고 알을 낳는 알락수염하늘소의 비명으로
숲이 잠깐 소란했는데
죽어서 다시 사는 서어나무의 간절이 푸르르 웃겠다
그러니까 서어나무는 알락수염하늘소를 부려서 날아갈 다음 생을 기다리던 거였다
키다리 서어나무를 데리고 숲을 살아내야 하는 알락수염하늘소는
나무가 아주 떠나기 전에 온전한 집터를 찾아야 할 텐데
편애가 심하다는 서어나무의 본관을 믿는 수밖에
어쩌면, 알락수염하늘소의 수염 무늬는 제가 환생시킨 서어나무의 숫자인 듯도 하여
죽어서 다시 사는 것들의 이름 앞에 깊이 절한다
- 「죽음의 쓸모」 전문
이 시는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환생의 과정으로 보여준다. 서어나무의 소멸은 알락수염하늘소의 탄생을 부르고, 그 순환은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죽어서 다시 사는 것들의 이름 앞에 깊이 절한다”라는 고백은 죽음을 향한 연민이자 존엄의 선언이다.
그렇다고 박미라의 시가 언제나 죽음을 환생으로 승화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 그대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렁이 랩소디」를 꼽을 수 있겠다.
덥다, 뜨겁다, 펄펄 끓는다. 절절 끓는다.
살이 타들어간다. 데어 죽을 것 같다.
드문드문 꺼내 쓰던 낱말을 뒤적인다
그러나, 나갈 사람은 나가고 뛸 사람은 뛰어야 산다고
죽음을 작정한 사람처럼 불볕 속을 걸어가는데
보도블록 위에 죽은 지렁이 즐비하다
어디로 가려던 것일까
풀밭도 그늘도 멀고 먼데
어쩌자고, 길을 잡았나
죽은 지렁이를 밟지 않으려고 겅중거린다
지렁이는 데어 죽었다
지렁이는 말라 죽었다
지렁이는 타 죽었다
꺼낼 시간을 놓친 쿠키처럼 숯이 되는 중이다
아니다 숯처럼 다시 불이 될 수는 없을 테니
저 혼자 바스러져 지워지는 중이다
지렁이와 다른 목숨을 사는 나는
죽지 않고 마트에 다녀올 수 있다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날씨다
- 「지렁이 랩소디」 전문
이 시에서 지렁이의 죽음은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다. “데어 죽었다, 말라 죽었다, 타 죽었다”라는 반복은 죽음의 잔혹한 풍경을 누적시킨다. 시인은 보도블록 위의 죽음을 밟지 않으려 발을 굴리지만, 죽음의 이미지는 끝내 독자의 눈에 각인된다.
마지막 구절,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날씨다”라는 문장은 아이러니하다. 고통 속에서 맞이하는 죽음과 존엄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그러나 이 거리감을 통해 시인은 인간의 존엄, 죽음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자연스럽게 열어젖힌다.
문학평론가 신상조 역시 이 시집의 핵심을 “거짓말, 그 지독한 연민에 대한 보고서”라 명명한다. 그의 평에 따르면 “오래된 것들이 풍기는 냄새”는 곧 존재의 본질적 “향기”이며, 박미라의 시는 바로 그 흔적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힘을 얻는다.
이 시집은 “죽음의 쓸모”라는 제목처럼 죽음이 무용한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 계기임을 보여준다. 때로는 소멸 속에서 새로운 환생의 가능성을, 때로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실상을 직시하면서 존엄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이 박미라가 말하는 죽음의 쓸모일 것이다. 웃음을 거두고도 남는, 서늘한 울림이 이 시집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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