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맞서는 시원한 상상
시집 『난 늘 첫사랑만 해요』는 주관적 관점과 상상으로 재구성한 허구적 진실을 통해 삶의 보편적 진실에 다다르고자 한다. 이러한 보편적 진실은 공동체가 믿길 바라는, 또는 시인이 믿고 싶은 가치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상상으로 빚은 세계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그럼에도 시인이 품은 내적 갈등이 어디로 어떻게 몸짓하는지 분명하게 살필 필요가 있는데, 〈시인의 말〉에서 그 이유를 만날 수 있다.
“시를 쓰는 매 순간/후회를 치료하는 약이 발명되었다”는 말처럼 김광명 시집은 어떤 후회로부터 파생된 현실을 상상의 영역을 통해 비현실의 세계에서 복구하려는 정신적 심리적 몸짓이다. 아울러 “친구를 이해하려면, 아물지 않은 살갗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망고의 초대」)라는 문장은 이 시집으로 들어서는 여러 키워드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는데, 우리는 시인이 제시한 “아물지 않은 살갗”이 현실과 비현실을 연결해 주는 상징적 고리이며, 이것이 각 시편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시집 전체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 찾는 수고로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김광명 시인이 세상의 부조리에 문학으로 저항하는 이유는 “못 가진 자들은 기도가 너무 많아 망할”(「글래스비치」) 것만 같아서 때문은 아니었을까. 마치 자신이 못 가진 자들의 목소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하느님부터 찾아보자, 아빠”(「다운사이징」)라는 음성을 직접 듣기라도 한 듯, “가면을 벗어도 얼굴이 없는”(「허밍」) 사람들의 처음 표정을 알고 있다는 듯, 그래서 결국 “의사가 되지 못하고 선장이 되지 못하고 전기 기술자가 되지 못하고 디자인이나 자연과학도 하지 못하고 봉준호가 되지 못하고 언니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고등어가 되지 못하고 십자가도 되지 못하고”(「결정」)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소수와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시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다른 무언가에 투영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가 시인이다. 거기에 얼마나 자신의 언어를 쏟아내느냐, 또 얼마나 깊고 넓어지느냐는 각자의 고민에 따른다. 현상에 이데아를 스미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화자는 결국 누적된 자아의 발현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모든 화자는 시안詩眼으로 세상을 보려는 김광명의 시 세계에 부합한다.
“어지러운 발자국을 세고 또 세던,/한 무더기의 엄마들”이 형상화된 시인의 내면이라면 “어지러운 발자국”을 뒤따라 살피는 일은 독자의 역할일 것이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뷰파인더」) 삶은 없다. 그들과 기꺼이 함께 흔들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시인이라면 그가 만나는 모든 세상은 매번 두근거림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후회를 치료하는 새로운 첫사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