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쾌식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가시 잃은 성게』는 삶의 고통과 상실을 통과한 끝에서 발견되는 빛과 향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날카로운 가시를 품었던 존재들이 어떻게 그 가시를 내려놓고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는지를 섬세하게 노래한다. 이 시집에서 ‘가시’는 상처와 고독, 그리고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의 상징이다. 그러나 문쾌식 시인의 시는 그 가시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가시가 사라진 뒤의 평화와, 상처를 껴안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고요한 힘을 보여준다. 『가시 잃은 성게』는 단순한 위로나 치유의 언어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끝내 견뎌낸 이들이 건네는 깊고 조용한 동행의 시집이다.
이 시집은 여섯 개의 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부는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꽃과 벌레, 자연의 언어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시행착오와 틈, 안개, 상고대처럼 날카롭고 불완전한 순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완전함을 꿈꾼다. 2부에 이르면, ‘가시 하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다’라는 부제처럼 고통이 성찰의 도구로 자리한다. 가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겸손, 그리고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시대의 상처를 품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3부와 4부는 꽃과 벌레, 그리고 오래 함께한 사물들을 매개로 삶의 단단한 뿌리를 이야기한다. 접시꽃, 독일붓꽃, 범꼬리꽃, 그리고 작은 곤충들의 세계가 펼쳐지며, 시인은 그 안에서 인간의 얼굴을 본다. 이러한 자연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상처 입은 존재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고 서로를 살리는지를 보여준다. ‘흔들리되 꺾이지 않으리’, ‘상생의 거울’ 같은 작품에서 시인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전한다. 5부와 6부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결국 가시 없이 피어나는 새로운 자아를 노래한다. ‘이제 나는 가시 없이 피어난다’라는 선언은, 치열한 고통을 지나 마침내 자유와 평화를 얻는 인간의 영원한 갈망을 상징한다.
『가시 잃은 성게』는 상처의 기록인 동시에, 그 상처를 넘어서는 희망의 기록이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단단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는 날카로운 가시에 찔린 자신의 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 시간조차 꽃을 피우기 위한 필연이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쾌식 시인의 시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삶의 바다는 우리를 가꾸고 다듬어, 마침내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껍질을 남긴다.” 이 시집은 삶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 혹은 오늘을 겨우 버티는 모든 이에게, 한 줌의 흙처럼, 한 알의 보석처럼 조용히 품에 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