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바람으로 말한다』는 시인 박종필의 첫 시집으로, 바다와 섬, 바람이라는 자연의 풍경을 빌려내어 말하지 못한 감정, 잊힌 이름, 돌아오지 못한 마음들을 조용히 불러낸 작품이다. 진도의 풍광 속에서 침묵과 고요를 천천히 응시하고, 그 속에 머물던 삶의 흔적들을 시의 언어로 채집해 낸 이 시집은 독자에게 설명보다 깊은 울림을 선물한다.
5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섬을 바라보다’로 시작해 ‘바다는 말이 없다’, ‘섬의 가장자리에서’, ‘돌아서야 할 길 위에서’, ‘바람은 다시 섬으로’라는 흐름을 따라간다. 이는 시인의 기억 여정을 따라 섬에 닿고, 사라진 것을 회상하며, 다시 돌아오는 삶의 순환을 보여주는 구성이기도 하다. 각 부는 섬의 정서와 사람들의 삶, 고요한 사물들에 깃든 감정들을 포착해 낸다. 특히 대숲, 돌담, 폐교, 팽목항 등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시인의 마음을 투영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며, 독자의 내면에 닿는 이미지로 남는다.
박종필 시인은 “말없이도 닿는 마음이 있고,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바로 그런 조용한 여백 속에서 태어났다.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소리 없이도 깊은 울림을 가진다. “섬은 말이 없다. 그러나 바람이 스쳐 가면 숨겨둔 시간이 깨어난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집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감정의 흔들림을 관찰하고, 그 속에 말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낸다.
『섬은, 바람으로 말한다』는 시인 개인의 회상일 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자기 삶의 조각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말없이 지나간 시간, 잊힌 기억, 닿지 못한 말들. 그런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며, 조용히 품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팽목항에서 멈춘 침묵, 폐교 앞에 남은 기억, 다시 돌아온 길 위에서 섬은 묻지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책은 단지 읽는 시집이 아니라, 바람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만지는 경험이다.
감정과 존재에 대한 섬세한 사유, 그리고 자연과 기억 사이에 놓인 말 없는 관계들을 탐색하는 이 시집은, 그 자체로 고요한 위로이자 성찰의 순간이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오래 남는 여운을 지닌 『섬은, 바람으로 말한다』는 현대인의 바쁜 마음에 조용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