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시간의 균열, 그리고 감각의 미세화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배경은 시인이 오랜 시간 겪어온 병이라는 체험이다. 이전 시집에서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병(病)을 얻었다. 그곳에 세 들어 살면서 내 것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모조리 금 가고 붕괴되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는 고백을 통해, 병이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시간과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드러낸다. ‘내 것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속수무책으로 금 가고 붕괴되는 경험은, 예측 불가능한 병의 속성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되고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시인의 감각은 오히려 더욱 미세하고 날카로워진다.
「저수지」는 이러한 감각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시다. “겨울에 집에 두고 온 사진 몇 장을 생각했다/ 북쪽에서 박하 향의 은근한/ 빛이 자박거렸다/ 저녁 쓰르라미가 잠깐 울다 갔다”는 구절은, 거대한 흐름이 멈춰버린 듯한 병의 시간 속에서도 미미한 감각의 흔적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일깨운다. 사진이라는 정지된 이미지, 박하 향처럼 은근히 스며드는 빛의 감각, 그리고 짧게 울다 사라지는 쓰르라미의 소리 등은 일상적인 시간의 지속이 무너진 자리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다. 이는 병이 부여한 강요된 고립 속에서 시인의 의식이 바깥 세계의 미세한 파동에 집중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붕괴된 시간의 틈새로 스며드는 이러한 감각들은 시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시간을 열어주고, 그 안에서 새로운 언어가 움틀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자아 해체의 흐름, 그리고 물성(物性)의 언어
박성현 시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적 개념은 ‘흐름’이다. 이 ‘흐름’은 단순한 물리적 움직임을 넘어, 자아의 고집을 해체하고 무아(無我)의 상태로 진입하는 시적 경지를 의미한다. 「모든 감각을 세우고」에서 시인은 “외투를 벗어버리고/ 흐름이 되자고 당신이 말했네”라고 한다. 여기서 ‘외투’는 자아를 감싸는 모든 관습적이고 방어적인 껍질을 상징하며, 이를 벗어던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시인은 ‘흐름’이 되는 순간, “그것은 중력을 밀어내고/ 구름 위로 단번에 솟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의 중력과 병이 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구름처럼 자유롭게 솟아오르는 해방감은, 병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얻어지는 역설적인 깨달음이다. 시는 더 나아가 “흐름이 된다는 것은/ 사물의 모든 방향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며, “흐름으로 남는다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나를 밀어내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나의 의지로 나를 밀어내는 것’은 자아 중심적인 시선을 버리고 세계의 모든 존재들과 동등하게 교감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소종민 평론가에 의하면 이는 “아상(我相)을 지우고 무아(無我)의 상태로 ‘나’를 밀어내는 것”이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타자와 세계의 물성(物性)이 온전히 스며들 수 있는 빈 공간을 마련하는 행위다.
이러한 흐름의 감각은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식물, 들」에서 시인은 “빛이 쏟아졌다/ 손바닥에 뭉쳐 있다가 녹으면서 살 속을 파고들었다/ 빛의 육체를 만져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고백한다. 빛이 단순히 시각의 대상이 아니라,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육체를 이루는 경험은 시인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게 세계와 교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햇빛이 자란다」에서 “단지 바라보기만 했는데, 식물을 타고 오르내리는 물의 미세한 박동이 들려왔다”고 쓴 대목은, 사물을 꿰뚫어 그 본질적인 생명력에 다가서는 시인의 통찰력을 드러낸다. 이처럼 박성현의 시에서 자연과 사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병든 몸의 감각을 대신하고, 흐름의 언어를 형성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고립의 서사, 그리고 사랑과 타자의 역설적 출현
시집 전반을 감싸는 정조는 고립이다. 병든 몸은 필연적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야기하며, 시인은 ‘고립’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박성현의 시에서 고립은 단순한 절망의 표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립은 타자를 불러오는 역설적인 조건으로 작동하며, 사랑이라는 구원의 통로를 열어준다.
「경주·2」는 고립 속에서 ‘당신’이라는 타자가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빗방울 하나가 닿은 것인데 순간 수면이 파르르 떨렸다”는 미세한 시작은, 모든 것이 단절된 듯한 고립 속에서도 작은 외부의 자극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고백한다. “사랑은 그렇게 온다/ 다른 눈은 감겨 있고 오직 한 개의 시선만이/ 당신에게 길을 내었다”. 여기서 ‘다른 눈이 감겨 있다’는 것은 세속적인 시선이나 방어적인 자아가 차단된 고립의 상태를 의미하며, ‘오직 한 개의 시선’은 오로지 ‘당신’에게로 향하는 순수한 시선을 뜻한다. 이 구절은 고립이 단절을 뜻하지만 동시에 사랑이 스며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이라기보다, 병든 몸을 해체하고 자아를 흐름 속에 놓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천국」에서는 이러한 타자의 수용이 극대화된다. “당신을 나의 모든 천국이라 불러도/ 전혀 거리낌 없지 // 그러나 천국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 결국 당신은/ 나의 모든 죽음이었네”라는 구절은, 사랑하는 타자가 곧 자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동시에 소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천국’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당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역설은,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가 자아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또한 시인은 「얼굴이 있던 자리」에서 ‘얼굴 없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한다. “한 노인이 손가락질했다/ 당신처럼 표정이 아예 없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는 구절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얼굴’의 상실은,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내 손에 남겨진 굴곡은 여전히 깊고 단순한데 왜 내게 얼굴이 없다고 말했을까”라는 질문은, 병을 통해 육체적 형상이 흐릿해지고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성찰하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내가 내 옆에 누운 후」에서 “내가,/ 내 옆에 눕는다/ 늙어가는/ 그 얼굴을 지켜본다”고 쓴 대목 또한, 자신을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통해 병으로 인해 변모하는 자아의 모습을 냉철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고립과 병이 자아를 해체하지만, 그 해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타자와 깊이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새’의 은유와 방향성의 재구성
박성현의 시집에서 ‘새’는 특별한 은유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새’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고, 고립을 초월하여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다. 「새의 방향」은 이 시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시인은 “나는 죽었고/ 누군가 내 시체를 묻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죽었고”라는 문장은 실현 불가능한 역설처럼 들리지만, 시적 허용 안에서 자아의 근원적인 소멸과 변모를 암시한다. ‘오래된 정류장’, ‘뒤틀린 잡목들’, ‘지저분하게 변색된 지방도로 이정표’ 등이 ‘내가 본 세계의 마지막 풍경’으로 제시될 때, 이는 병으로 인해 닫혀버린 유한한 세계의 끝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 나는 죽었고/ 신은 나를 완벽한 고립에 던져 넣었다”는 절망적인 진술 뒤에 “그는 나를 덮은 흙더미에 또 다른 이정표를 꽂았다/ 덧칠된 화살표 위로/ 새가 날아갔다/ 새가 날아가고 방향이 생겼다/ 황혼이 다시 깊어졌다”는 반전이 일어난다. 죽음과 완벽한 고립의 자리에서 ‘새’가 출현하고, 그 ‘새’의 날갯짓을 통해 비로소 ‘방향’이 생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새’는 시인의 자아가 죽음을 통해 변모한 새로운 존재이거나, 혹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언어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 육체의 소멸과 고립을 경험한 시인의 자아는 ‘새’의 형상으로 재탄생하며, 삶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새’의 움직임은 비단 「새의 방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다락방에서 한때─북촌 방향 5」에서 “노래에 깃든 모든 장소가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쓴 소년의 노래처럼, ‘새’는 고립된 공간에서 시간을 넘어선 자유로움을 부여한다. ‘새’는 병든 몸의 한계를 초월하여, 감각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매개체이자, 시적 자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자유의 상징이다.
무너진 시간에서 피어난 언어의 꽃
박성현 시인의 『그 언덕의 여름, 바깥의 저녁』은 오랜 투병과 고립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으로 확장시키는 심도 깊은 시집이다. 시인은 병으로 인해 금 가고 붕괴되는 시간 속에서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 틈새를 통해 세계의 미세한 감각들을 포착하고, 자아를 해체하여 ‘흐름’이라는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립은 역설적으로 타자와의 깊은 만남과 ‘사랑’을 불러오는 통로가 되며, ‘새’라는 은유를 통해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 시집은 “형상과 흐름, 그리고 새와 당신”의 시집이라는 소종민 평론가의 규정과 같이 병든 몸의 기록이자 동시에 사랑의 시학이며, 언어가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어내고 해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실험적 도전이다. 박성현의 언어는 무너진 시간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고립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병의 시간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의 시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통 속에서도 빛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의 가능성과 언어의 힘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한국 시단에서 보기 드문 빼어난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