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구도와 생활의 서정
-김영탁(시인ㆍ『문학청춘』 주필)
강흥수 시집 『최고의 희망』은 일상의 평범함을 견디는 감각으로부터 삶의 내밀한 진실과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생활의 세뇌’ 속에서도 시적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인간 존재의 존엄과 연민을 일상 언어로 꿰뚫는 힘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철학적 사유와 사회적 성찰, 따뜻한 유머와 연민의 정서를 오가며 독자에게 다층적인 감동을 준다. 1부의 시편들은 특히 ‘도道’ ‘사랑’ ‘불안’과 같은 존재론적 주제에 다가가며, 인간이 감내하는 고통의 본질과 그것을 이겨내는 내면의 언어를 숙고한다. “사랑이 최고의 도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언어는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선 인간 실존의 궁극적 물음을 던진다.
2부는 가족, 노년, 중년 부부의 삶, 인간관계의 쓸쓸한 균열 등을 다루며, 도시적 고독과 시대적 무력감 속에서도 유머와 관조로 삶을 견디는 인간상(人間像)을 보여준다. “허술해지는 기억 창고”에서 시인은 노화의 자각을 자조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다시 시를 피워내는 근원을 탐색한다.
3부에서는 현대 사회의 비정한 단면들-정치의 위선, 전쟁과 폭력, 물질문명 속 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되, 이를 비극적 환멸로만 치닫게 하지 않고, 사람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연민으로 품는다. 특히 “무기력해지거든 신도림역에 가보라” 같은 시에서는 삶의 활력을 지하철 군중의 역동 속에서 되찾으라는 시인의 실용적 권유가 울림 있게 다가온다.
강흥수의 시편들은 시대의 어지러움과 삶의 곤궁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도 결코 비관에 머물지 않고, ‘최고의 희망은 사랑’이라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결론에 이른다. 이 시집은 한국 현대시에서 드물게 ‘실존적 구도와 생활의 서정’을 조화시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진솔하고 단단한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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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틈새를 채우는 사랑의 시선
김홍진(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존재의 의미와 사랑의 원환론
강흥수의 시적 여정이 비교적 완만한 변화 과정을 보인다 해서 그의 시 세계가 동어반복적이거나 정체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큰 진폭 없이 완만한 진화의 과정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시 정신의 변모나 차이는 불가피하다. 즉 시집마다 시인이 포착하는 바는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지만, 그것이 계속 새롭게 탐색 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은 분명 강흥수의 장점이다. 그는 자신의 시 세계를 느긋하고도 꾸준히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시적 변화를 실현해 왔고, 이를 통해 정체감이나 피로감보다는 오히려 성실한 진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시적 완만함은 시를 대하는 고집스러운 집념을 증명하며, 그 집념은 이번 시집에서 특히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랑과 긍정, 포용과 화해의 태도로 수렴된다.
『최고의 희망』은 근면성과 성실성, 합리성과 규칙성, 생산성과 유용성이 지배하는 세속적 현실원칙에서 갈등하고 불화하는 가운데 생산된 이전의 시 세계와는 분명한 변별성을 드러낸다. 이전의 시집에서 뚜렷이 나타났던 현실과의 갈등과 대립과 불화, 분리 의식과 소외 의식과 상실감, 그로부터 기인하는 결핍과 불안과 부재 의식은 어느 정도 상쇄되고 비교적 평온한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지각하는 경우가 짙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세속적 직장인으로서의 구속적 삶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품 안 고향으로 회귀한 체험이 불러온 내적 전환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시선은 이전보다 한결 따뜻하고 평화로우며, 감각은 포용적이고 온화한 정서로 채색되어 있다.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빛을 발하는 것은
사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세상 최고의 희망은
사랑이다
태어남도 사랑이었고
죽음 또한 사랑이리라
이보다 더 큰 희망을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다
「최고의 희망」 전문
시를 쓴다는 것은 견자(見者)의 눈으로 삶과 세계를 직관하고 통찰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견자로서 강흥수의 눈은 자기 내면 깊숙한 세계를 탐사하는 일이며, 동시에 삶과 존재를 돌아보는 사유와 통찰의 여정이기도 하다. 『최고의 희망』은 견자로서 시인이 바라본 삶과 세계, 존재의 본질과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배어 있다. 인용한 시에서와 같이 감정의 격렬한 표출보다는 윤리적 태도와 내적 성숙이 중심이 되는 에토스적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이야말로 삶과 세계에서 ‘최고의 희망’이라는 시집의 표제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번 시집은 여러 방향에서 모색되고 생성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랑’이다. 시인은 사랑을 삶의 본질이자 존재의 궁극으로 규정함으로써 공허 속에서 충만을 발견하며,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
시인이 말하는 ‘최고의 희망’으로서 진정한 사랑은 사실상 현대적 삶이나 세속화한 세계의 모든 규범과 원칙에 저항한다. 사랑은 실존을 앞서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실존적 고통과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희망이고, 삶의 시작과 끝을 포괄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암울한 실존적 상황에서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며, 시간을 초월해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본질적 요소이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궁극적이며 본질적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최고, 최선, 최상, 최후의 가치이다. 따라서 강흥수에게 사랑은 존재론적 기초이자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지이다.
그러므로 삶의 궁극인 사랑은 ‘최고의 도(道)’로서 이 시집의 강력한 주제 중 하나를 구성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세상 최고의 희망”으로서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가치이다. 이러한 인식은 “도가 길이라면/ 사랑은 목적지”이고 “도가 종국에 이르면/ 사랑에 닿는다”(「최고의 도(道)」)거나, “사랑이 최고의 도”(「도(道)라는 것은」)라는 진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삶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흔히 도를 닦는다고 하면 고립과 고행, 절제와 인내를 연상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수행을 넘어 ‘사랑’이야말로 진흙처럼 “질퍽질퍽한 생활”(「질퍽이는 생활」)과 척박한 “바위투성이 땅”에서 용트림하는 소나무처럼 “굴곡 많은 생활”(「고통의 아름다움」)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때 가장 숭고하다고 말한다. 이는 존재의 의미를 사랑에서 찾는 시인의 윤리적 태도를 환기하는 동시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축을 이룬다.
강흥수에게 삶의 길이란 시의 길이며 사랑의 길이다. 그것은 또 주어진 실존적 운명과 한계를 견뎌내고 돌파해 나가는 초극의 길이고, 실존적 본질을 탐색하는 성찰의 길이며, 삶의 원리로서의 길이다. 그에게 삶의 원리는 궁극적으로 길의 원리로 수렴되고 사랑의 세계로 귀착한다. 길은 인간의 삶이나 운명의 행로를 뜻하므로 삶의 가장 보편적 상징으로 쓰인다. 길은 한 세계를 다른 세계로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런 의미에서 길과 사랑의 결속은 생성과 트임의 확산을 이루는 계기성과 지향성을 갖는다. 그리하여 다음 시에서와 같이 존재의 근원과 생성의 원리에 이르는 우주적 리듬을 반영하는 차원으로 심화 확장한다.
세상에 빈 곳은 없다
허공조차도 실상은 하늘이다
여백 또한 여유로운 하늘의 모습이다
좁은 틈새마저도 어느새 하늘이 메꿔 준다
그러하기에
빈틈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늘이 꽉꽉 채워주며 동행하는 것이다
「텅 빈 곳도 하늘이다」 전문
존재의 허무에서 충만을 감각하는 인용 시는 시집 전체의 심미성과 철학적 좌표를 제시한다. 자연이 인간과 다른 점은 구분이나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빈 곳은 없”으며 “허공조차도 실상은 하늘”이고 여백이 하늘의 모습인 것처럼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물질적 실체에 국한하지 않으며 비어 있음조차도 하늘, 즉 어떤 위대한 본질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허무와 공허, 불안과 무의미함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그 공허함과 빈틈을 “하늘이 메꿔” 주고 “하늘이 꽉꽉 채워준다”는 믿음으로 전환시킨다. 이는 불완전한 인간의 실존적 본질, “어떤 형태로든 고달픈”(「인생이란」) 인생의 빈틈과 공허를 채우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환기한다.
강흥수는 겉보기에 비어 있는 허공과 틈마저도 의미와 가치, 생성의 리듬으로 충만하다고 사유한다. ‘텅 빈’ 공간조차 자연, 우주, 절대자와 연결된 하늘의 일부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존재의 의미를 긍정하는 철학적 태도를 드러낸다. 그는 고통과 희망, 실패와 죽음 같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간결하고 여백 있는 언어로 풀어내 삶의 단면들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간다. 이 선은 결국 ‘사랑’을 향해 나아가며 사랑은 존재의 결핍을 채우고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질료로 작용한다. 결국 사랑은 궁극적 언어이자, 존재를 완성으로 이끄는 영혼의 귀환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최고의 언어, “사랑보다 숭고한 도”(「최고의 도(道)」)는 없으며, “영혼의 원천으로 돌아가는”(「인생길이란」) 영혼 회귀의 길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