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우리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서사화되고 있는가. “진보나 혁명 같은 거대 서사가 소멸한 후” “무한한 자료를 검색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된 이 세계에서” 역사는 흡사 박물관처럼 아카이빙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다. 저자는 이 미세하게 “파편화된” 역사적 기록을 “문학적 텍스트로 변환하는 작업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학주의자”라고 말한다. 문학의 “큐레토리얼”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한 소설인 윤정모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와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를 분석한 평론에서 보여지듯 이소는 (작가가 선택한) 역사적 사건의 교차점에 서 있는 문학,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역사 속 개인의 트라우마가, 그 외상의 심연이 너무 깊어 무언가를 쓸 수 없는 이유가 쓰는 이유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안에서 문학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집중한다.
이제 우리 시대에 ‘역사’라는 것이 바라는 바도 가야 할 바도 모두 잃은 채 기억과 증언과 기록의 합집합을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다면, 역사와 가장 유사한 속성을 지닌 것은 ‘외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외상의 본질이 다름 아닌 ‘말할 수 없음’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역사를 외상처럼 인식할 때 그것을 서사화하려는 시도는 흡사 뮤지엄이 사물의 배치와 배열을 통해 과거를 펼쳐놓는 것처럼 공간과 사물에 기대어 이루어지기 쉬울 것이다.-「적산가옥」(p. 42)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으며, 그동안 발표했던 서른한 편의 글을 엮었다. 그는 책 속에서 ‘공간’과 ‘사물’의 데카르트좌표를 그린다. 그리고 그 좌표 안에 문학작품들을 배치한다.
1부 ‘큐레토리얼-좌표, 배치, 연결’에서는 문학비평의 좌표를 제시한다. 역사 속에서 문학비평의 자리를 톺아보고, 그 방대한 역사적 아카이브 속에서 평론가는 이제 ‘지식인’이자 ‘작가’가 아닌 ‘큐레이터’로서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전한다. 마치 전시 기획과 더불어 미술관의 행정을 운영하는 미술계 큐레이터처럼 지금의 젊은 문학평론가에게도 이러한 역할이 요구된다고 보는 저자는, 젊은 문학평론가들이 작가들과 함께 아카이브를 구축하거나 모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시도 역시 이러한 맥락이라고 짚는다.
2부 ‘적대와 품위-사건, 정치, 페미니즘’에서는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나간 여러 작품에 대해 비평한다. 저자는 “역사는 트라우마적 과거와 신체화된 기억을 기록과 사물로 제시한다”라고 보고, 이를 기록하는 문학을 고통의 총체이자 재현, 증언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증언의 거처」에서는 김숨의 『L의 운동화』를 분석하며 ‘신발’이라는 사물에 주목하며, 작품 속 신발은 “이한열의 운동화를 비롯한 미선이·효순이의 신발, 아우슈비츠의 신발 등 역사적 죽음을 증언하는 유물들과 제주 4·3 사건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사라져가는 생존자들의” 실존적 증언임을 설파한다.
3부 ‘경도와 위도’에는 여러 작가론과 작품 비평을 묶었다. 지구 좌표의 세로축과 가로축을 의미하는 경도와 위도처럼 현재 한국문학계에 담론을 형성하는 작품들을 꼽아 그만의 좌표에 위치시켰다. 특히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분석하며, ‘불안정성’을 가로축, ‘정치력’을 세로축으로 설정해, 등장인물들이 위치한 사회학적 영토를 시각화한 글이 인상적이다. 네 개의 영역-변화 없이 체제에 안착한 시스템 영역, 취미를 통해 일상의 권태를 완화하는 취미의 영역, 불안정하지만 연대 의지가 약한 실존적 영역, 그리고 불안정성과 정치력이 모두 높은 정치적 영역-으로 구분된 좌표계를 통한 이 분석은 각 영역 간 전환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가가 낙관도 냉소도 아닌 현실 감각 속에서 ‘아주 작은 승산’을 포착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낸다. 이처럼 저자는 작품의 시공간을 정리하고 배치해 좌표계를 만들고, 그 좌표계로 지도를 그려보면서 전체를 조망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너머, 독자가 위치를 자문하게 만드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분석과 관찰로 구축한 비평 좌표
내 도구 중 하나는 좌표계. 내게는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데카르트좌표 하나를 그려보는 버릇이 있다. x축과 y축으로 좌표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소설의 시선에 따라 점을 찍어본다. 점들의 연결을 살펴보면 소설이 위치하는 범위나 운동성 같은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주술과 언어의 유물론」(p. 359)에서
평론가 이소에게 ‘데카르트좌표’는 비평적 도구로 활용된다. 실제로 학부 시절 ‘이과생’이기도 했던 그는 “분석과 합성이 이루어지는 실험실과 무관한 장소에서 비평을 한다는 것은, 마치 관측 장소가 변해도 관측 결과가 일정하길 바라는 고전물리학의 세계처럼 단조”롭다고 말한다. 문학은 그의 시공간적 좌표계에서, 스펙트럼 안에서, 사고실험으로, 벤다이어그램으로 분석되며 새로운 체계를 얻는다.
문학작품과 병치·배열된 과학의 도구와 언어는 그의 고유한 도구로 기능한다.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분석적·과학적인 비평은 ‘고효율 현미경’이 되어 문학작품 속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내고 분류해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포착된 작품들은 저자의 데카르트좌표계 위에 놓여 별자리처럼 빛난다. 이소의 첫 비평집 『부재하거나 사라졌거나 영원한』 역시 그 별자리를 따라가는 문학비평의 새로운 길잡이별이자 좌표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