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로가 되는 빛의 조각들
김미정 작가와의 만남은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통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그녀는 첫 만남에서 이런저런 문학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는 순간에 뜻밖의 행동을 했다. 모두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섰는데, 저만치 몇 걸음 옮기던 그녀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달려와 나를 꼭 끌어안은 것이었다. 그 감정의 상태를 떠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비교적 직감이 빠른 나는 그녀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밝게 웃으며 함께 꼭 안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말이 필요 없는,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되는, 언젠가 소설의 제목으로 썼던 ‘말이 없는 말’이라는 제목의 글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그녀의 그런 모습은 문학을 대하는 자세로 이어졌다. 또한 소설작품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쓴 ‘사브레’라는 단편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어릴 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람들을 괴롭힐 때마다 할머니의 입에 사브레 과자를 쏙쏙 넣어주며 입을 막았다나 뭐라나 하는 자신만의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 상상력으로 전혀 다르게 변주하여 소설 속에 녹여낸 작품이었다. 어쨌든 김미정 작가의 문학을 대하는 자세는 그녀가 기질적으로 문학에 대한, 보이지 않는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녀의 그런, 문학을 향한 막연했던 경외심이 싹을 띄어 첫 번째 열매로 맺힌 결실이 바로 이 ‘요요의 빛’이다.
“사블레 드릴까요?”
204호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휠체어를 연못가의 벤치까지 밀고 가서 고정했다. 그리고 그녀를 일으켜 벤치에 앉혔다. 굴곡진 등받이에 몸이 기울지 않게 잘 기대어 놓고 숄을 다시 둘러주었다. 과자를 조각내어 204호의 입에 댔고, 204호는 새 둥지의 새끼처럼 입을 벌렸다. 입을 오물거리는 204호의 모습은 ‘지나온 시절 어느 순간의 행복이 이랬어.’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204호 곁에 앉았다. 그리고 사블레를 입에 넣었다. 씹지 않아도 녹아나는 과자는 달콤했다. 어릴 적 이 과자를 조금씩 나눠가며 먹던 때가 기억났다. 과자가 귀하던 시절 집에 찾아온 손님이 사블레를 선물로 사 온 적이 있었다. 과자는 설탕의 단맛과 다르게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바삭하게 부서지며 입안에 들어와서는 스르르 녹아 넘어가던 기억. 나는 그때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생들과 나눠 가진 사블레 몇 개를 종이에 싸서 다락에 숨겨 놓았었다. 다락 안의 과자를 한 조각 입에 넣고 나와서 오물거릴 때면 동생들이 무얼 먹고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을 벌리면 달콤한 향이 퍼져 동생들에게 숨겨 놓은 사블레를 빼앗길 것 같았다. 기억해 보면 과자 한 조각일 뿐이었는데 그것이 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인지. - 등단작품 ‘사브레’ 중에서
김미정 작가는 말을 조리 있고 그럴듯하게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하고자하는 말을 앞뒤와 경중을 따져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보다 글이 훨씬 강한 사람인 것이다. 번번이 이 사람이 이런 작품을 썼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표제작 ‘요요의 빛’은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로 더욱 그랬다. 그래도 한편으론 그래, 맞아! 하고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았다. 그녀가 늘 이야기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것이 직설적이지도, 강성을 띄지도 않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녀는 종종 자신의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그것은 아마 누구나 그렇듯, 그녀 역시 자신의 마음도 누군가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의 발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이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표제작 ‘요요의 빛’은 그녀의 심리가 가장 잘 투영된 작품일 수 있겠다. 특히 소녀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은 따뜻한 위로가 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시금 소녀에게 사는 곳과, 가족에 관해 물었다. 소녀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만 보았다. 그런 소녀에게 먼저 발을 닦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소녀가 흙투성이 발을 내려다보며 왜 씻어야 하느냐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소녀를 욕실로 데려가 발을 씻겨주었다. 자신이 씻는다고 했지만 내가 잘 닦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발은 다행히도 다친 곳이 없었다. 발등에 몇몇 쓸린 자국은 풀잎에 쓸려 생긴 생채기 같아 보였다. 비누질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깨끗이 문질러주었다. 소녀는 간지럼을 타는지 킥킥대며 잠깐 웃음기를 보였다. 나는 손을 마저 닦아주고 소녀와 거실로 나왔다.
- 11p ‘요요의 빛’ 중
이 소설집 ‘요요의 빛’에 실린 열편의 작품은 세 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에는 ‘나’라는 개념으로 묶여 ‘요요의 빛’, ‘사블레’, ‘쉽게 나오지 않았던 말’, ‘저녁노을’이 실려 있다. 두 번째 챕터에는 ‘너’라는 개념으로 묶여 ‘너울거리던 시간’, ‘어쩔 수 없는 일’, ‘서로 다른 체념’이 실려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챕터에는 ‘우리’라는 개념으로 묶여 ‘제로니모카페의 핫초코’, ‘해후’, ‘산조르디’가 실려 있다. 그러니 이 소설집 ‘요요의 빛’은 기존의 방법과 달리 다소 실험적인 구성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예술이란, 다시 말해 소설이란 나에서 시작해 너로 향하고 우리에게 이르는 과정이 아닐지. 그로인해 세계관과 우주관을 획득하는 게 아닐지. 그렇다고 이제 첫 번째 소설집을 출간하는 김미정 작가가 그것까지 기획하여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고를 받아 읽으며 그것이 절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오랜 습작기를 거쳐 오십대 후반에 작가가 된 뒤에도 소설 쓰기를 생활의 중심에 놓은 채 무명의 시간을 묵묵히 보내는 사람의 자세와 세상을 바라보는 연륜이 표출해낸 결과일 것이다.
나는 갑자기 지나를 업고 싶었다. 그래서 걷고 있던 지나를 등에 업었다. 지나는 등 뒤에서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로 조잘거리다 졸음이 왔는지 얼굴을 기댔다. 따뜻한 품은 가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등으로 느껴지는 포근함이 왠지 모든 근심을 날려 주는 것 같았다. 마리의 결혼, 지나와 마이클, 그의 두 아들들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거라는 희망이 마음에 피어올랐다. - 산조르디 중
이 소설집 ‘요요의 빛’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발문의 서두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각각의 조각처럼 나뉘어 있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된 것처럼 직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인생의 큰 그림 하나를 이루듯. 그러니 이 작품집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삶을 직조하는 이야기의 직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직물은 단순히 삶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희망과 평화, 그리고 자연과의 연대감을 때론 정설로, 때론 역설로 형성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요요의 빛’에 실린 각각의 작품들은 모두가 ‘빛’이라는 하나의 상징아래 존재하고 있다. 빛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이자, 다시 찾는 희망이며 삶의 의미를 비치는 등불인 것이다.
어느덧, 마음이 바빠졌다. 우선 집 안에 있는 상자 속 물건들을 풀어 놓고, 가구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병아리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그때, 다시 씨이잉 씨이잉하고 요요가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왠지 꿈속 소녀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소녀의 말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시 내게 올 거예요. 내가 끈을 놓지 않으면 말이죠.’ 이상하게도 아침 햇살을 받은 해바라기의 노란 꽃잎이 요요의 빛처럼 반짝였다
- 36p ‘요요의 빛’ 중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은 시간과 기억, 그리고 체념에 대한 성찰이다. 한 중년의 남자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 사이를 오가며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왜곡을 경험하는 이야기인 ‘너울거리던 시간’은 시간의 무상함과 기억의 흐름을 보여주며 인간존재의 불가피한 체념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탐구한다. ‘서로 다른 체념’ 역시 복잡한 인간관계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삶의 무상함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그나마 피어나는 평화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두 작품 역시 역설로 마무리되지만 결국 ‘빛’이라는 메시지가 희망으로 치환되어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가로등 곁의 가로수 잎들이 이제야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불현듯 어느 날인가 선영과 함께 걷던 날이 추억됐다. 취직은 힘들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시기였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나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선영이 말없이 걷다가 불쑥 던진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선영은 감정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자.”
마치 짧은 시의 한 줄을 읽은 것 같았다. 그리고 참 건조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선영은 변명하지 않았고 나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
- 155p 너울거리던 시간 중에서
은주는 실망한 듯 말하고 다시 노조원 이야기로 열을 냈다. 나는 은주의 말이 다른 나라 말처럼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왠지 은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퍼즐의 빅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다시 은주에게 전화를 걸 일이 생길지라도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고
- 188p 어쩔 수 없는 일 중
나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앞의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경계가 없어지고, 불투명해져 갔다. 그런 내게 그녀는 희뿌연 덩이로 보일 뿐이었다. 겨울밤의 가로등처럼 원형을 알 수 없는 둥근 빛 덩이 마냥.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물을 만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름’이라는 것이 불필요하였거나 불편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마음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로의 삶에 개의치 않았고 무관심했다. 그래서 그런 이름 따위는 우리에게 거치적거리는 옷가지처럼 구차할 뿐이란 생각이었다. 그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 193p 서로 다른 체념 중
김미정 작가의 취미는 여행인 듯하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세계 곳곳을 다녀오는 것을 보면. 그렇기에 세 번째 챕터 ‘우리’로 구성된 ‘제로니모카페 핫초코’와 ‘해후’와 ‘산 조르디’는 작품의 배경이 작가가 여행을 다니며 구상한 이야기와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 같다. 작가는 이 세 작품 속 각각의 이야기에 삶의 무상함과 사랑, 희망, 그리고 자연과의 연대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감성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역시 우리 내면의 깊숙이 자리한 슬픔과 아픔,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따뜻한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요요의 빛’ 작품집을 모두 읽고 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보다, 작품 속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김미정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 담겨 있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한 번도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말이 없는 말로 전달되었던 그 느낌! 다시 말해 김미정의 소설작품 속에는, 아무리 허구라고해도 그것을 통해 알게 모르게 감지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있는 느낌이다. 조용하고 덤덤한 문장으로 말하지만 각각의 인물 속에서 상처, 아픔, 슬픔 같은 그 무엇이 감지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상처, 아픔, 슬픔이 있을 터, 그것이 인생이기에 모든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 터. 어쨌든 자신의 상처, 아픔, 슬픔을 예술로 승회시키는 삶은 어떤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것이다. 운명처럼 맞이한 작가의 길, 더욱 좋은 작품으로 가꿔나가길.
발문 - 이평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