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새로운 감수성의 포착
사랑과 고립 너머 ‘우리’라는 착시
이효석문학상은 2024년 5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문예지 및 기타 매체에 발표된 중ㆍ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위원회의 1차, 2차 독회를 거쳐 그해 가장 문학적 성취가 뛰어난 6편을 뽑고, 이 가운데 대상 1편과 우수작품상 5편을 선정해 독자에게 선보인다. 제26회 대상 수상작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는 K-장녀 ‘사라’와 타고난 외모에 의지해 변변한 직업도 경제관념도 없는 동생 ‘사야’를 통해 자매의 애증과 불화를 그린 작품이다. 사과와 링고(りんご, 사과),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는 두 개의 단어처럼 ‘사라’와 ‘사야’는 비슷한 허영을 품고 있는 거울상이다. 서로 의지하면서도 혐오하는 이들의 관계는 그간의 ‘착한’ 여성 서사가 보여주지 못한 여자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파국적 결말이라는 돌출부마저 매력적으로 읽히는 파괴력 있는 작품이다.
수상작품집에 함께 실린 자선작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는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우미’가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2030 여성 인터뷰’라는 취재 아이템을 맡아 지역 집회를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중 한 유튜브 영상에서 6년 전 덕질했던 최애 아이돌 ‘유리’와 닮은 남자를 보게 되며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사랑’이 기억을 매개로 재구성되는 양상과 이를 표현하는 창작의 욕망과 윤리적 갈등이 섬세하게 교차하는 지점을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이희주는 당대의 소설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감수성, 즉 “매끈하게 안착해 있던 세계”(작품론 중에서)에서 벗어난 세대적 위치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타인은 모두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가 된다”
일상을 다시금 생동하게 하는 문학적 상상력
김경욱의 「너는 별을 보자며」는 이른바 ‘덕질’에 빠진 아내 ‘은하’와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소설가 ‘기영’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타인은 누구나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가 되며, 그 상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지만, 막상 그 상상이 눈앞에서 현실이 될 때 상상과 현실이 어긋나고 마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덕질’이라 불리는 행위를 통해 상상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함을, 그리고 타인과 그 세계를 이해하는 일의 지난함을 안정적이고 품위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남숙의 「삽」은 함부로 베푼 호의로 인해 ‘여고생 성추행범’이라는 사회적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한 주인공 ‘재구’의 이야기다. ‘삽’은 노동의 도구이자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중적 사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심연의 비밀을 캐내려는 의지의 상징인 동시에 그 삽이 향하는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의 심연이라는 점에서, 마지막에 ‘재구’가 자신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김혜진의 「빈티지 엽서」는 타인의 엽서를 읽으며 자신에게도 가능했을지 모르는 ‘다른’ 삶을 꿈꾸는, 그러나 다시금 ‘이곳’의 중력에 이끌리고 마는 인물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이 타인의 엽서를 읽을 때 동네 사람들 역시 주인공의 삶을 함부로 읽는 장면이 겹쳐지면서 중심 소재인 엽서는 삶에 대한 은유로 완성된다. 이미상의 「옮겨붙은 소망」은 남편을 잃은 n&n’s가 그와 여생을 함께하려고 모은 돈을 빈티지 주얼리에 탕진하고, 그것을 그녀에게 클릭 도우미로 고용된 ‘나’에게 유산처럼 남김으로써 ‘소망’이 옮겨붙는 이야기다. 아파트 시세차익으로 시간을 사려 했던 n&n’s는, 역시나 돈을 주고 사들인 빈티지 주얼리에 담긴 여성들의 역사와 자신의 사연까지 보태어 ‘나’에게 증여하며, 애도되어야 할 시간의 가치마저 거대한 교환 체계 안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천문대에 모여 사는 ‘기이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면사무소 직원 ‘박 주사’와 신입 ‘노아’의 이야기다. 독수리가 떼 지어 다니는 소도시의 풍경과 낯선 종교 행사가 벌어지는 천문대는 그 자체로 탁월한 서스펜스를 자아내며, ‘우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란 전제를 바탕으로 상상된 타자의 문제에 대해 묻는다. 마지막으로 2024년 제25회 대상 수상자인 손보미의 자선작 「자연의 이치」도 함께 실렸다. 자동차 공장이 망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지방의 어느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 ‘영유’의 성장드라마로, “세상이 무너질 때에도 순서”가 있는 거라는 간과할 수 없는 ‘시간의 이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26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과와 링고」를 비롯해, 이 책에 함께 실린 우수작품상 수상작들은 날것 그대로의 거친 현실 속에서도 세공된 별처럼 빛나며,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문학적 은유로 완성된다. 이효석문학상이 한국문학과 독자를 잇는 값진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
■ 심사평
이희주 「사과와 링고」
사과와 링고(りんご, 사과).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는 두 개의 단어처럼 사라와 사야는 비슷한 허영을 품고 있는 거울상이다. 서로 의지하면서도 혐오하는 이들의 관계는 그간의 ‘착한’ 여성 서사가 보여주지 못한 여자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설령 그 끝이 파국일지라도. _제26회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회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타인이 모두 다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가 된다는 문장에 공감했다. 흔히 ‘덕질’이라고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과 그 세계를 이해하는 일의 지난함을 안정적이고 품위 있게 이끌어간 작품이다. _강영숙(소설가)
김남숙 「삽」
누군가가 사회에 놓은 덫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타인이 ‘나’보다 먼저 내 약점을 파악했다고 느낄 때 엄습하는 공포를 빠른 속도감으로 그려냈다. _윤고은(소설가)
김혜진 「빈티지 엽서」
타인의 엽서를 읽으며 다른 삶을 꿈꾸는 동안 자신의 삶 또한 타인에게 속수무책으로 읽히고 만다. ‘빈티지 엽서’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다. _이지은(문학평론가)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저녁에 맥주 한잔하는 삶에 지쳐 자발적 낙오자가 된 사람들, 시야에 포착되지 않았던 존재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는가의 층위에서 읽힌다. _심진경(문학평론가)
함윤이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소도시와 자연, 문명과 야생 등이 기묘하고도 자연스럽게 얽혀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봉화가 그저 방화로 취급되는 아이러니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_김미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