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을 말하면 ‘연인’ 간의 사랑을 제일 먼저 떠 올릴 것이다. 하지만 오기수 시인은 사랑의 원초는 어머니로부터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우리의 영혼이 지쳤을 때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사랑과 희생이라는 요체들을 모두 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이며, 어머니는 우리의 둥지이자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준 인생의 항구이다. 누구나 이런 어머니와 함께했던 삶이 공유된 정서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유년기의 자식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어머니와 함께한 유년 시절의 기억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며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킨다. 그래서 유년 시절에 대한 어머니의 재인식은 삶의 좌절감과 불안감을 이기고 자기 극복의 의지를 갖게 하며,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머니’란 단어만 떠올려도 목이 메고 눈시울이 젖는다. 어릴 적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아련해진다. 삶의 질곡 속에서도 인자한 어머니의 가난한 모습이 선하다. 다음 시인의 시 「민들레꽃 되신 어머니」는 궁핍한 현실을 헤쳐 나가신 모든 그리운 어머니의 고단한 모습 그린 것이다.
노오란 수건 쓰시고
그 색이
햇살에 지칠 때까지
허리에 목을 고이 감추시며
밭을 매시던
어머니
어느덧
푸석해진 흰머리 날리며
노을 깔린 신작로에 나와
도회지로 간 자식 그리워
소맷자락으로 눈물 지우시던
어머니
「민들레꽃 되신 어머니」 부분
이 시에서 “노오란 수건 쓰시고/그 색이/햇살에 지칠 때까지//허리에 목을 고이 감추시며/밭을 매시던/어머니”는 전형적인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제 생각하면 그렇게 젊다 못해 어리고 예뻤던 어머니는 늘 헤어진 수건을 쓰시고 허리가 땅에 묻히도록 고개를 숙이고 밭을 매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을 떠나 도회지에서 직장을 잡고 결혼해 살 즈음의 어머니는, “어느덧/푸석해진 흰머리 날리며//노을 깔린 신작로에 나와/도회지로 간 자식 그리워/소맷자락으로 눈물 지우시”며 자식들을 기다리고 기다리셨다. 그리고 ‘힘드니 내려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청개구리처럼 참말로 여기던 그 어느 날, 어머니는 “이제는/연지곤지 지운/민들레꽃 홀씨 되어//꿈 없는 꿈/길 없는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기수 시인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청춘과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젊음은 인생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황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세 시대인 지금 그 젊음은 더 단축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히 청춘 시절이 늘어나고 있지만, 청년들이 그 젊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단지 기성세대의 상식에 불과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도 취업이나 연애, 결혼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청년이 갈수록 늘어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에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외친다.
그래서 시인은 시 「목련꽃에게」를 통해 말한다. 사람들은 봄날 꽃피운 목련꽃에게 얼마나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애찬하는가!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잎이 나기 전 피어오른 꽃봉오리는 참으로 숭고함마저 든다고……
가진 것을 허무하게 만든 겨울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메마른 가지들
이파리를 뿌리에 감추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꽃피운
목련꽃은
젊음이 메고 가야 할 아름다움이다
「목련꽃에게」 부분
저자는 목련꽃의 꽃봉오리를 젊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겨우내 메마른 가지를 보면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추위는 “가진 것을 허무하게 만든 겨울/더 이상 잃을 것 없는/메마른 가지”를 만든다. 하지만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터뜨릴 때 우리는 환호한다. 젊은 날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할 이유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이파리를 뿌리에 감추고/정말 아무것도 없이, 꽃피운/목련꽃은/젊음이 메고 가야 할 아름다움이다”라고 생각했다. 목련꽃 같은 젊음을 갈구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젊음의 꽃은 반듯이, 기필코 피워야 한다. 하지만 그 목련꽃도 꽃지고 잎이 무성해지면 다음 봄이 올 때까지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 저자는 인생의 풍요로움 속에서 이것을 느꼈다. 그래서 “뿌리를 기억하지 못한/이파리로 꽉 찬/목련은/눈길 없는/발자국 없는/그림자들만이 한가로운/삶의 뒤안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젊음이 그토록 힘들었어도, 그 젊음을 뒤로한 인생은 젊음의 그림자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오기수 시인은 1957년생으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작가이다. 그는 전직 대학교수로 한국조세사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조세사학자로서 『조선을 망친 대동법』, 『세종 공법』(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황희, 민본 시대를 이끈 행복한 2인자』, 『세종대왕의 혁신 리더십』 등 많은 책과 논문을 출간하고 발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시인은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1급정사서’로 2018년 장편소설 『백성의 신 황희』를 출간하였다. 퇴직 후 뒤늦게 시를 쓰면서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시(詩)터지기’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글여울 신인문학상 시부문 우수상(제목: 늦가을 여행)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이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는 여러 시인들의 시와 해설을 소개하여 지금까지 300만 뷰 이상으로 구독자가 5,300명을 넘고 있다. 그는 유튜브 ‘시터지기tv’에서 삶과 인생의 서정적인 자작시를 중심으로 시낭송을 하는 등 시인 자신만의 글향기를 피우기 위해 시터지기로서의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