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시집 『나의 벗, 라벤더에게』는 “우정”과 “사랑” 사이, “그리움”과 “기억” 사이에 놓인 한 사람의 진심이 보랏빛 라벤더 향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시집이다. 시인은 ‘벗’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연인에게 건네듯 다정한 시를 쓰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듯 시를 불러낸다. 이 책의 제목이 ‘라벤더’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라벤더는 향기로 기억되고, 향기로 그리워지며, 향기로 남는다. 윤수진 시인의 시 또한 그러하다. 한번 스며들면 오래 남아 마음을 어루만진다.
시인은 40대에 들어서며 사랑과 삶에 대한 성찰로 가치관이 변했고, 그 변화는 시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시인의 말」에서 “가볍고 산뜻하게 시에 감정을 녹여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듯, 이 시집은 짙고 무거운 애절함보다는 발랄한 웃음과 재치, 가볍지만 진심 어린 언어로 이루어진다. “나의 벗, 네가 좋다 / 네가 주는 유쾌함이 좋다”라고 고백하는 시 「나의 벗, 해바라기씨유」에서부터, “라벤더야, 슬퍼 보인다”로 시작되는 시적 대화들까지, 모든 시는 마치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 같고, 일기 같고,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 같다.
이 시집의 큰 매력은 일상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끌어안는 시인의 태도에 있다. 시인은 키스의 낯선 첫맛에 “윽 퉤 / 끔찍해”라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의 향기와 감각이 어떤 것인지도 솔직하고 발랄하게 풀어낸다. 「첫 키스」와 「키스의 맛」은 첫 키스를 대하는 상반된 느낌을 유쾌하게 묘사한다.
시집의 중심에는 ‘라벤더’와 ‘우정’이 있다. 이 우정은 연인의 사랑보다도 깊고 오래 가는 진심 어린 관계이며, “우리 우정이 결코 연인의 사랑보다 덜하지 않음을 / 네가 알 수 있다면 좋겠어”라는 시구는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힌다. 시인은 연인이 되어야만 사랑이라 믿는 세상에 조용히 이의를 제기하며,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충분히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언어는 결코 논쟁적이지 않고, 오히려 나직하고 따뜻하다.
이 시집은 또한 삶의 감각을 향기로 기억하는 시인의 체취가 담겨 있다. 프로방스 레몬에이드에서 보라카이의 egg yolk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촉각과 미각, 후각을 넘나들며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사과꽃 향기」, 「초여름 장미」, 「라벤더와 여름 이야기」, 그리고 「산소 같은 너」 연작들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자연을 인격화하여 사랑의 은유로 삼고,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킨다.
나아가 시는 국경을 넘어 기억의 장소들로 확장된다. 벤쿠버의 PGIC 어학연수 시절, 캐나다에서의 신혼여행, 유럽 여행을 꿈꾸는 낭만까지 삶의 여행지마다 시인은 그리움과 감사, 사랑과 우정을 놓지 않는다. 특히 「홈스테이 마미 앤 대디」에서는 음식과 돌봄을 매개로 한 인간적 유대와 정서를, 「정성」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적으로 엮어내며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나의 벗, 라벤더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벗에게 건넬 수 있는 시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어쩌면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라벤더처럼 향긋하고, 수채화처럼 번지는 감정의 물감들, 어린 시절의 친구, 연인이 되지 못한 벗, 멀어진 가족, 그리운 타지의 누군가.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깨닫는다. 사랑은 반드시 소유가 아닌 향기처럼 남을 수도 있고, 우정은 말 없는 깊이로도 충분히 누군가를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했던 이들에게, 그리고 그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고 싶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시인의 사려 깊은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