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사라지고, 삶의 터전을 잃은 고라니 이야기
-‘개발’로 사라져간 생명의 마지막 기록
울창한 숲은 고라니가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그곳은 고라니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모든 생명의 세계이지요. 때때로 안전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숲은 그들을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숲의 끝에서』에 등장하는 고라니는, 그런 ‘자연(생명)’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숲을 오가며 고라니는 또 다른 세상을 그려 봅니다.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숲의 끝은 늘 궁금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무들이 숲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숲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커다란 무언가가 땅을 흔들고, 풀이 꺾이고, 세상이 온통 소란스러워집니다. 고라니는 새로운 숲을 찾아 떠나지만, 위험하고 두렵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숲에는 더 이상 고라니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미 사람들과 알 수 없는 것들로 채워졌지요.
‘개발’이라는 이유로 숲은 인간에 의해 소비되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던 생명들은 흩어지고, 사라져갔고, 더는 무엇도 품어 줄 수 없이 황폐해집니다. 숲은 낯설어졌고, 고라니의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고라니가 네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땅도 이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고라니에게 이유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개발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고발하기보다, 누군가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자며 이 이야기를 건넵니다. 『숲의 끝에서』는 문명이 침범한 비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그들의 시선으로 남기는 마지막 기록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리가 만든 세계에 남겨진 질문
인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러니까 개발과 문명을 오로지 감당하던 존재들은 이제 일어설 힘도, 머물 곳도 없습니다. 점차 숲으로 다가오는 인간의 세계는 그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듭니다. 홀로 남은 고라니는 늘어가는 회색의 인공물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숲이 생명력을 잃어갈수록 고라니도 기대를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냐고요.
자연을 훼손하였으니, 보호하자는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이 비인간 존재의 터전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고 합니다. 그 주체를 달리 생각해 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지요.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63일』, 『나는』 에 이어 출간되는 『숲의 끝에서』는 반달의 동물권 그림책 프로젝트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약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세계에 여전히 남겨진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