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지는 줄이 있다고?
줄줄이 줄줄줄 끝없이 이어지는 말놀이 세상
어디론가 떠나는 걸까? 표지에서부터 여행 가방을 들고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글자가 줄줄이 이어진다. 책의 문을 열면 얇고 긴 줄 하나가 우리를 맞이한다. 도대체 어떤 줄을 말하는 책일까? 호기심이 잔뜩 생겼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개미들을 따라가 보자.
가느다란 ‘줄’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언어유희 그림책으로 즐겁게 기르는 문해력
이야기는 하나의 줄처럼 보이는 개미들의 행렬에서 시작된다. ‘작은 줄’이라는 첫 문장은 다소 낯설다. ‘짧은 줄, 얇은 줄도 아닌 작은 줄?’ 그 답은 커다란 개미의 그림자를 보며 ‘큰 줄’이라고 말하는 다음 장면에서 바로 밝혀진다. 《줄줄이 줄줄줄》은 사물인 ‘줄’과 어떤 방법이나 사실을 뜻하는 의존 명사 ‘줄’의 동음이의를 활용한 언어유희 그림책이다. 가느다란 줄을 따라 ‘작은 줄, 큰 줄’ ‘있는 줄, 없는 줄’ ‘가벼운 줄, 무거운 줄’처럼 중첩적 의미를 담은 재밌는 상황이 줄줄이 이어진다. 착시를 활용해 유머러스하게 구성한 그림은 우리말에 담긴 동음이의의 언어적 즐거움을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줄’의 변신과 언어적 활용은 끝이 없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줄이 수평선이 되기도 하고 역기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 낸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작다’ ‘크다’와 같은 단순한 반대말부터, ‘입이 무겁다’는 뜻의 관용어까지 만날 수 있다. 재치가 가득한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어느새 모든 말에 ‘줄’을 붙여 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즐거운 말놀이를 통해 문해력을 쑥쑥 길러 보자.
글과 그림의 엇박자가 만드는 반전의 재미
작은 개미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발상의 전환
언뜻 장면마다 모두 다른 상황을 보여 주는 것 같지만, 작품 속 줄은 하나로 쭉 이어진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 위를 기어가며 모든 장면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개미들을 찾을 수 있다. 마치 개미들이 안내하는 즐거운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다. 작품을 더욱 뜯어 보기 위해선 글과 그림의 미묘한 엇박자를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벼운 줄’ 장면은 그림에서 사람이 들고 있는 ‘줄’이 가볍다는 뜻으로 먼저 읽히지만, 힘겹게 들고 있는 표정을 주목해서 본다면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는 뜻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방금 읽은 ‘줄’이 그림을 보고 나면 다른 ‘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림 속에 담긴 반전들은 보편적인 관념에 가벼운 물음을 제시하고,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여 한층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긴장의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다음 장면에서 대뜸 줄을 싹둑! 잘라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다양한 어린이책의 그림을 그려 온 장여회 작가는 첫 창작 그림책을 통해 그림책만의 장르적 즐거움을 가득 담아냈다. ‘줄’이라는 소재와 어울리는 기다란 판형부터 장면에 꼭 맞는 구도와 배치를 통해 때로는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단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한 개미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줄처럼 매력이 끝도 없이 줄줄줄 이어지는 그림책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