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대체 불가의 작가로 고유의 개성을 심화시켜온 소설가 김종광이 자신의 작가 인생 전체를 전복시키는 장편소설을 이십여 년의 세월을 바쳐 완성했다. 메타적 현실을 창출하고 풍자적 기법을 동원한 고유의 판타지 소설, 요컨대 메타판타지풍자 장편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오랜 굴곡의 세월을 거친 한국문학의 현주소, 한국적 삶을 아프게 되짚어보게 만드는 한국소설사 최초의 통렬한 자아비판적 다장르 융합형 장편소설이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사회를 직접 거명하지 않지만, 가상의 나라 율려국의 인물들, 조직들, 언론, 정치 구조, 심지어 문학계 내부까지를 통해 현실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기이하게 비튼 거울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거울을 마주한 독자는 불편함과 동시에 웃음을 피할 수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웃기게 쓰였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사회 풍자극이다.
허구라는 가면을 쓰고, 너무나 구체적인 현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율려국은 단지 하나의 상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장화된 은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 풍자가 아니다. 이것은 웃음을 통해 현실을 찢어발기고, 풍자를 통해 진실을 우회하며, 무력한 글쓰기를 통해 체제의 민낯을 드러내는 문학적 저항이다. 그 어떤 목소리보다 작고 조용한 이 작품은, 그렇기에 더 통렬하고 더 아프게 느껴진다.
소설의 주인공 소판돈은 작가의 분신, 혹은 문학이라는 행위 자체가 만들어낸 유령에 가깝다. 그는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에 사로잡힌다:
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
글을 쓰는 나는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록이 고통을 구제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플롯, 갈등 구조, 개연성, 인물 서사의 성장을 요구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은 불친절하다. 요컨대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독자를 시험한다. 그러나 이 불친절함은 작가가 의도한 윤리적 거리의 창출이다. 소판돈은 ‘서사를 통한 구원’을 부정하면서도 그 부정을 통해 구원을 갈망한다. 이것은 윤리의 이중 구조이며,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무언의 요청을 한다:
“당신은 이 불편한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가? 당신은 진짜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는가?”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단순히 창작자의 고뇌를 그리는 메타픽션이 아니다. 이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서 끝내 확신하지 못하는 자의 통렬한 자기성찰적 기록이다. 지금껏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