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미래앤 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임고을의 손 편지 같은 새 동화
아이는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때때로 이런저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그 실수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삶의 규칙을 하나씩 터득해 나가게 된다. 《다가오는 거대 편지》의 주인공 유하는 편지를 잘못 쓰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편지지에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큰 실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편지지를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는 친절을 베푼 엄마 덕분에, 유하는 며칠을 가슴 졸이며 편지 찾기 대장정에 나선다. 읽는 내내 유하가 정말 무사히 편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끝까지 한달음에 읽게 만드는 동화이다.
《다가오는 거대 편지》는 제1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녹일 수 있다면》을 내고, 이어 제2회 문학동네 초승달문학상을 수상한 임고을 작가의 신작 동화이다. 유하는 잘못 부친 거대 편지를 통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까? 성장과 깨달음 같은 주제는 차치하고라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유하의 편지 찾기는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손 편지를 쓰는 즐거움이 악몽으로 변하다
유하는 요즘 보기 드물게 손 편지를 쓰는 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손 편지를 써서 할머니에게 부친다. 그러면 할머니도 답장을 해준다. 매우 손쉽고 간편한 이메일이 생긴 이래, 손으로 쓰는 편지를 주고받는 이가 별로 없다. 유하의 할머니가 이메일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기보다 유하와 할머니는 함께 손 편지를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컴퓨터 화면의 반듯한 활자로 보는 이메일과 달리, 손 편지는 봉투와 편지지의 촉감, 색감, 손 글씨, 우표에 담긴 그림 등등을 눈으로, 손으로 접할 수 있는 색다른 감각을 전해 준다. 접힌 편지지를 펼칠 때의 두근두근한 기대감 또한 짜릿하다.
손 편지의 맛을 알게 된 유하는 일주일에 한 번 할머니에게 편지를 부치는 일상이 익숙하다. 매번 같은 요일에 엄마와 함께 편지를 부치러 간다. 그런데 엄마가 지난주에 이미 편지를 부쳤다며 오늘은 안 가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친구에게도 편지를 부쳤다고 덧붙인다. 갑자기 유하 머릿속에 빨간불이 왱왱 울린다. 다급하게 방에 가서 찾아보니 정말 그 편지, 아니 비밀 일기가 없어졌다. 엄마는 다빈이에게 쓰는 편지라 생각하고 그 편지에 우표를 붙여 보낸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실 그건 편지가 아니었다. 단지 편지지에 썼을 뿐이다. 다빈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에 편지 쓰듯 편지지에 쓴 것이다. 하지만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딸기 케이크를 가져간 다빈이가 미웠다는 이야기만 잔뜩 쓴 일기였다. “너 계속 그러면 너랑 친구 안 할 테니 조심해!”라는 으름장도 놓았다. 다빈이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편지지에 쏟아낸 것이다. 일기라도 상대에게 말을 걸 듯 쓰는 게 나을 거 같아 편지지에 썼을 뿐이다.
유하와 엄마는 이미 부친 편지를 찾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본다. 우체국에도 가 보고 다빈이 집 우편함도 살펴보러 간다. 하지만 차마 우편함은 열어보지 못한다. 유하는 마음속에 점점 거대하게 커져만 가는 그 편지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다빈이 손에 들어가기 전에 되찾을 수 있을까?
소행성의 궤도를 수정하듯 어긋난 마음 수정하기
우주 관찰을 좋아하는 다빈이는 유하에게 소행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하는 소행성이 오는 길에 편지와 ‘꽝’ 부딪치길 간절히 빈다. 하지만 소행성은 유하와 다빈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나 올 것이고, 그전에 큰 충격을 줘서 궤도를 바꿀 것이란다. 그래? 궤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거지? 유하는 편지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다빈이에게 진심을 담아 다시 편지를 쓴다. 엉뚱하게 발사된 거대 편지 덕분에 유하는 다빈이에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다빈이도 유하에게 말 못 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초등 저학년 아이에게 친구 관계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었다가 때로는 어렵고 속상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친구 때문에 속상할 때는 자기만의 일기장에 친구 험담을 잔뜩 털어놓으면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한다. 몰래 한 험담 덕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생겨 조금 더 친절해질 수도 있다. 유하에게 그 편지는 그런 용도였다. 잘못 궤도에 오른 거대 편지 덕에 유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고, 며칠 마음 앓이를 한 끝에 다빈이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친밀해진다.
실수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더 나은 가능성의 미래
그게 잘못인 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실수를 인지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맺고 끊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실수를 흐지부지 잊기 쉽다. 당시에는 조금 힘이 들더라도 적절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하는 엄마의 실수와 자신의 실수 덕에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친구에게 화가 난 마음을 어딘가에 쓰기보다 직접 이야기를 나눠 오해를 푸는 쪽이 더 낫다는 것과 편지 쓰기의 올바른 방법 등 유하를 짓누를 듯이 거대해진 편지 한 통 덕분에 삶의 중요한 태도를 익히게 되었다. 이제는 할머니뿐 아니라 절친한 친구와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숙한 친구 관계를 배워나갈 것이다. 더불어 《다가오는 거대 편지》는 물성 있는 손 편지의 존재감 덕분에 손 편지의 즐거움과 짜릿함을 모두 경험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