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어린이 부문 우수상 수상작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껏 내딛는 금빛 시간 모험!
채윤이는 살면서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해 본 적이 없다. 바로 자신과 달리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언니 때문이다. 엄마는 채윤이의 생일마다 언니 핑계를 대며 생일 파티를 미뤄 왔다. 언니의 시험이 코앞이니 집중해야 한다거나, 피아노 콩쿠르 준비 때문에 바쁘다면서 말이다. 그럴 수 있다고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채윤이는 결국 서러운 마음이 쌓여 엄마에게 언니와 자신을 차별하는 거냐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엄마의 화난 표정에 더는 불평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집에서 나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코스모스 도서관이다. 도서관에는 채윤이에게 간섭하거나 뭐라고 하는 어른이 없다. 게다가 재밌는 책들도 가득하다. 채윤이는 이곳에서 여러 모험 이야기를 읽으며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화난 마음을 달래던 채윤이는 수상하고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시간 여행자의 책’이라는 제목처럼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상상한 채윤이의 바람과 달리, 책에는 원하는 날짜를 쓰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짓말 같은 글자만 떠오른다. 하지만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뭐라 하지도 않을 텐데,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채윤이는 책에 날짜를 적는다. 그 순간 황금빛 시계가 떠오르며 시간이 되감기는데…….
『시간 여행자의 책』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린다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로는 갈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 있지만 채윤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한 시간 전에 먹은 떡라면을 다시 먹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일에는 아무런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책을 두고 고민에 빠지는 순간은 미래를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이다. 자신이 죽은 이후로는 갈 수 없다는 책의 말은 괜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채윤이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자신이 서른 살 전에 죽을 일은 절대 없다고 믿으며 책에 시간을 쓴다.
숨겨져 있던 단단하고 강한 마음을 일깨우는 힘
“아직 포기하긴 일러.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미래에 도착한 채윤이는 자신이 열한 살 생일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좌절한 채윤이는 다급해진 마음에 실수를 저지르고, 시간 여행의 금기를 깨 버린 다. 그 대가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쫓기게 된 채윤이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를 찾아온다. 그럼에도 채윤이는 지난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선택은 바보 같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놓인 순간들마저 흘려보낼 수는 없다.
아직 포기하기 이르다는 채윤이의 말은 타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 주문과도 같다. 어떤 말은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했기 때문에 진실이 된다. 채윤이는 지난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의 선택이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미약하더라도 무언가 계속 해 나간다면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채윤이의 모험 앞에는 이 믿음을 시험하는 너무나 많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지켜야만 하는, 되찾아야만 하는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채윤이의 결심과 행동은 동화 초반 “어차피 언니만큼 못 할 텐데, 노력해서 뭐 해?” 라고 자문하는 채윤이의 태도와 상반된다. 채윤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친절하거나 용감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의 강아지를 찾아 주기 전 수지타산을 따지고, 엄마를 골탕 먹이면 마음이 후련할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채윤이는 갑자기 닥쳐온 불행 앞에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나아가려 노력한다. 『시간 여행자의 책』은 채윤이라는 평범한 아이가 실패와 실수를 반복해도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통해 어린이가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단단하고 반짝이는 용기에 주목한다.
모험의 사건들은 매번 우연히 일어나고, 의도치 않게 벌어진다. 마치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처럼 말이다. 『시간 여행자의 책』은 그렇게 지나온 모든 시간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다. 예측할 수 없는 매 순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 나가야 한다. 채윤이 역시 책을 발견한 날부터 계속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 선택은 때로 바보 같고,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기도 하다. 돌아보면 서툴고 어리숙했던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된다. 모든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채윤이의 오늘은 시간 여행을 떠나기 전의 오늘과 같은 하루다. 하지만 채윤이는 지금 이 순간이 그때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나온 모든 시간을 간직한 채로 앞에 펼쳐진 것은 스스로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는 빈 페이지의 빛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심사평
내 인생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는 설정이 아동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이끈다면, 그 자체로도 이 이야기는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