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밖에 모르는 주인 바보 강아지,
토리의 소원은?
분홍빛 구름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강아지별. 여왕님 앞에 선 강아지 한 마리가 동그란 눈을 빛내며 소원을 말해요. “딱 한 달만, 수아와 학교에 다니게 해 주세요!” 커다란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자, 플라타너스잎이 강아지를 휘감아요. 강아지는 갈색 곱슬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로 둔갑, 아니 변신했지요. 그렇게 토리는 ‘하루’라는 이름으로 수아네 학교에 전학을 와요.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그 슬픔은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게 깊고 캄캄한 곳으로 우리를 가라앉히지요. 토리가 떠난 수아의 일상도 그랬어요. 새학기가 시작했지만, 친구도 사귀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지요. 하지만 토리는 수아가 다시 웃길 바랐어요. 학교에 다니게 된 토리는 한 달 동안 수아와 함께하며, 강아지 특유의 쾌활한 에너지로 수아를 일으켜 세우지요.
토리의 소원은 왜 ‘한 달’이었을까요?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고, 혹은 수아와 영영 헤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빌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마 수아를 위해서였을 거예요. 자신이 아니어도 수아는 언젠간 이별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슬픔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사랑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길 바라서였을 거라고, 그 기특한 응원을 짐작해 봅니다.
물론, 하루의 학교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아요. 공만 보이면 달려가고 싶고, 코를 킁킁거리거나 나무 밑에서 다리를 들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오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감정에도 솔직하기에, 하루는 수아의 마음을 열고 주위를 환하게 만들곤 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공감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느새 깨닫게 되지요.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는 동물도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의 1부는 수아 시점, 2부는 토리 시점으로 같은 상황을 다르게 풀어내요. 수아는 토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토리는 무기력한 수아를 낯설게 느껴요. 하지만 사랑하고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둘을 다시 연결해 주지요. 이혜린 작가는 말해요. 강한 힘이 아닌, ‘강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요.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다시 웃게 하려는 다정한 용기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진짜 강함일지도 몰라요. 여러분도 수아와 토리처럼, 강한 마음으로 씩씩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