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곤 시인은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면허를 갖고 있고 특히 체외순환사 면허를 갖고 있습니다. 장롱면허가 아니라 수술 현장에서 필요한 면허였으니 따내는 과정에서, 또 따낸 이후 얼마나 많은 환자를 만났을까요. 그 만남의 과정이 제1부의 시편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인은 미국과 싱가포르, 일본의 유수 병원에 가서 연수도 여러 차례 받은 경력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보건의료 종사자나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강조해 교육했을 테지요. 심장 수술이 행해지는 수술팀에서 의사과 함께 환자를 살리는 일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이렇게 많은 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제일 앞머리에 있는 시부터 제 나름대로 감상을 해볼까 합니다.
수술이 끝나고
완치의 기대를 채우기는 늘 부족했고
이식한 심장이 뛸지는 아무도 몰랐다
불안은 허둥지둥 떠다녔고
이식의 오류는 비껴가지 않았다
긴장은 오래도록 나를 숙성시켰다
수술 마스크 밑에 몰래 넣은 초콜릿
포도당이 분해되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생은 먹고 배설 외 목적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박동을 기증한 사람은 죽음을 말했고
박동을 받은 사람은 침묵을 말했다
이식은 생과 사의 사이
죽은 사람도 죽을 사람도 살았다
- 「심장이식」 전문
의학적 상식이 없는 해설자는 심장이식 수술의 성공률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이식을 일단 하고 나서, 한 사람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박동을 하면 사는 것이고 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겠지요. 참 긴장되고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2연과 3연을 보니 수술이 그다지 성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집도한 의사의 입에다가 누가 살짝 초콜릿을 넣어주었을까요? 꽤 오랜 시간 물도 밥도 못 먹고 수술을 했다면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렸을 텐데, 그때 누가 입에 넣어준 초콜릿은 사막 횡단 중에 만난 오아시스의 물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심장을 기증한 사람은 이승에 있지 않고 심장을 받은 사람은 의식불명입니다. 아아, “이식은 생과 사의 사이”에 있는데, “죽은 사람도 죽을 사람도 살았다”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수술이 성공했나 봅니다. 죽은 사람의 심장이 산 사람의 가슴에서 박동하고 있다는 것, 현대의학의 개가라고 할까요, 예수의 부활 같은 기적이라고 할까요.
코드 브루(code blue)는 병원 내에서 심정지나 호흡정지 같은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령되는 응급 호출 신호로 응급상태를 지칭하는데 특히 심장마비가 온 환자가 발생했을 때 사용합니다. 심정지나 호흡정지가 오면 1초가 급하므로 환자를 바로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 즉 CPR, 제세동기, 산소공급 등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코드 블루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신호입니다. CPR은 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의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CPR- CPR-
혈관 잡고 어두운 부분 잡고
아트로핀 10ml 투여
심장충격기 슛!
한 번 더 슛!
CPR 한 번 더 CPR 한 번 더
- 「외딴집 코드 블루」 부분
응급 상황이 발생해 의사인지 구급대원인지 CPR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반응이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계속 부르고 있고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만……. 사건 발생 장소가 병원도 외딴집도 아닌, 우리들이 사는 e-편한 세상 아파트 108동(108번뇌?) 1009호(천국 호?)입니다. 앞으로 자식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외딴집 같은 곳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아파트는 각각의 집이 home이 아닌 house가 아닌가요? 현관문만 닫으면 외딴집이 되지요. 한집에서 같이 사는 식구들도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비정한 도시의 외딴집에서 박희곤 시인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어서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고독하고 아픈 현대인들이 자신을 구해달라는 신호를 그는 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