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맛"을 살아내는 시 - 이성만 시집 『맛』
시인은 ‘현재 순간’이 곧 진리의 현현이며, 유한한 존재가 무한과 만나는 자리라고 말한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맛』은 그런 사유의 밀도를 지닌 시적 고백이자, 일상에서 신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착실한 기록이다. 신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고요하고도 단단한 언어로 펼쳐있다. 이 시집은 단지 감성을 자극하는 시의 향연이 아니다. 독자를 현재라는 무시간적 순간으로 초대해 영원의 본질을 응시하게 한다.
‘맛’이라는 일상의 단어로 시작한 시인의 물음은,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 신과 인간을 아우르며 근원적인 진리와의 합일을 향해 뻗어 나간다. 종교적 성찰과 철학적 사유를 일상의 평담한 언어로 풀어내며, “잡곡밥처럼 구수한 삶”을 지향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사유의 여백으로 이끈다.
『맛』은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신앙의 고백이자 존재론적 질문이고, 철학이자 체험이다. 시집 곳곳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 죽음에 대한 담담한 이해, 존재의 의심과 수용은 독자에게 편안한 위안을 준다. 특히 “나의 하나님”, “사후에 대하여”, “두고 보자” 등의 시는 개인의 신앙 고백을 넘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시인은 종교적 열망과 회의를 넘나들며, 경계 없는 진리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를 탐색하고자 하며 종교적 언어를 빌려왔으나 깨어 있는 자의 진리탐구로 향해 있다.
시의 화자는 한 인간으로서 삶을 ‘잡곡밥’처럼 구수하고 단단하게, ‘똥오줌’처럼 자연스럽고 흔적 없이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은 무상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사유하며, ‘지금 여기’를 성실히 살아내는 태도다. 이 시집의 저변에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흐르며 시인은 그 답을 허황한 초월이 아니라 "현재 순간"에서 찾고자 했다.
『맛』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근원적인 차원에서 신과 인간의 삶을 되묻는 새로운 경지의 현대시다. 이성만 시인의 시는 독자를 영원의 한가운데로 이끌며, 삶 그 자체가 하나의 깨달음임을 조용히 속삭인다. 진리와 자아, 사랑과 실존을 고요히 되새기고 싶은 독자에게 이 시집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음미할 ‘삶의 맛’이 될 것이다. 또한, 시집 말미에 수록된 부록은 시인의 철학적 시적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해 주며 시집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 흐름으로 독해하게 돕는다. 『맛』은 삶과 죽음, 신앙과 의심, 사랑과 이별의 ‘맛’을 정직하게 곱씹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따뜻한 안부이자, 겸허한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