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에 우리의 문학은, 시는 무엇이어야 하 는가? 멜로드라마가 음악 반주를 깐, 비현실적 상황과 정형화된 인물 의 과장된 연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시詩도 그 멜로드라마와 얼마나 다를까? 감상적 산문을 행갈이 한 것을 혹은 설익은 아포리즘 apholism을 시라고 우기는 것은 시를, 알튀세르가 말한 ‘금박장식’ 쯤 으로 여기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가시可視적이지 않으면서 은폐되어 있지도 않은」에서 시에 관한 나의 관심은 ‘물질과 기억’이다. 여기서의 물질은 ‘사유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존재’하는 사물이고, 충족이유율 없이 우발적 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푼크툼은 이 우발적 물질들 사이에서 불 꽃처럼 발생한다. 푼크툼으로서의 시는 주름 잡혀진 시간들이 순간적 으로, 그러나 우발적으로 펼쳐지는 순간들이다. -「푼크툼punctum의 시학詩學을 위하여」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금광을 찾는 것도 아니고, 천국의 열쇠를 찾는 것도 아니고, 사물의 비밀 금고를 찾는 것도 아니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 도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히려 사유(이해)하 라!sed intelligere! 그것이 우리의, 시인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증상적 독서’로 오늘의 시 읽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