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아프리카인이라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우분투(Ubuntu)’ 정신이 넘쳐난다고 한다. ‘우분투’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인즉슨 “상대를 배려하여 나와 함께 상생함으로써 나도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배려받을 수 있다.”라는 상호간 상생의 정신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의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백인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적 통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27년이라는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차별에 대한 그의 투쟁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에 힘입어 그는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반이었던 ‘클레르크(Klerk)"의 백인 정부와 끈질긴 협상 끝에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격리정책)를 1993년 종결시켰다.
만델라는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흑인 참여의 자유로운 총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백인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상호 상생의 길을 택했다. 그의 이러한 ‘우분투’ 정신 때문에 남아공은 백인의 통치가 끝나고 흑인들이 집권했음에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백인에 대하여 노골적인 차별 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도 ‘우분투’ 정신과 꽤 닮아 있는 ‘정(情)’이라는 정서를 달고 산다. 여기서 ‘정’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어울리고 상생하는 정서나 마음가짐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 문화가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성숙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통찰력으로 사회적 행위규범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고, 상대방 역시 사회적 행위규범에 따른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건강한 사회 형성을 위해 사회적 행위규범에 어울리는 중한 책무를 짊어지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 도리라고 여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보통의 인간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행위준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는 좀도둑이나 절도가 비교적 흔하지 않은 편이다. 심지어 다액의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조차도 다중이 모인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탁자 위에 올려놓아도 손을 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형성할 책무에 충실한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국민은 비교적 자신의 행위를 사회적 규범의 틀 내에서 적절히 조종해 나가며, 타인과 상생하고 건전한 사회 형성을 위해 각자에게 어울리는 책무를 지닌 인격체임을 자부한다.
사회에 대한 이러한 책무의 부담은 우리 모두, 즉 인간을 존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유에서 비롯된다. 국가는 존엄한 인간에게 기본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고, 각 개인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은 한, 자기의 개인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며, 국가는 각 개인의 본질적 인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도출된다.
형벌은 장래의 잠재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운명을 지녔기에, 형벌을 받게 되는 수형자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전과자라는 낙인을 안기는 역기능도 적지 않다. 이러한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방위가 힘들 때 형벌은 최후수단으로써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형법은 여백과 관용의 정신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상의 바탕 아래 『형법연구 X』에서는 건강한 사회 형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 특히 다음의 주제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형법상 행위개념은 행위주체의 범위에 관한 문제이자, 사안을 장악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인간의 주체적 능력을 전제로 삼는다. 이에 착안하여 서술된 “형법상 행위개념에 관한 상념”을 비롯하여 모든 범죄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가 결합한 불법성을 본질적 내용으로 삼고 있음에 반해 위법성은 그러한 불법성의 수준이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을 정도여서 처벌할 만한 수준의 불법성을 뜻한다는 “범죄행위의 불법성과 위법성”을 쓰게 되었고, 술에 취한 사람은 육체만 취하지 않고 정신도 취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자유의사란 개념은 형법에 적합하지 않으며, 인간의 의사능력은 지각과 인식의 과정을 거쳐 개념화하는 등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점을 논증한 “자유의사와 책임”을 다루게 되었다. 또한 법률의 착오에 해당하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는 사안에 따라 형법 제20조 사회상규에 의하여 처벌이 조각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법률의 착오가 언제나 책임만을 조각할 수 있다는 전제는 틀릴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신의칙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가 형법상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 보증인적 작위의무를 발생하게 한다는 학계나 판례의 견해가 잘못임을 지적하는 “부진정부작위범에서 작위의무의 발생 근거와 한계” 등을 포함하여 “형벌의 존재 근거와 내용”, “죄형법정주의와 형법의 해석”, “헌법상 사형제도 폐지의 정당성”, “형법총칙과 각칙의 관계”, “횡령죄의 주체와 부동산 명의수탁자의 지위”,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의 형법상 재산 관련 범죄의 특성”,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례의 변경과 소급효 금지원칙”, “친족상도례의 개정방안에 관한 연구” 등 모두 23편을 서술했다.
이들 연구에 새로운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하게 도움을 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동운 명예교수와 김신 전 대법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아울러 다양한 주제에 관해 깊은 토론으로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썼던 논문 대다수를 꼼꼼하게 읽고 수정해 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이덕인 교수에게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다. 그의 탁월한 법학 실력이 언젠가 빛을 발할 것으로 확신한다.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준혁 교수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고명수 교수도 필자의 글을 읽고, 문제점을 지적해 준 데에 깊이 감사드린다. 필자가 저술한 다수의 책을 출판해 준 박노일 선생님께도 역시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