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대한 인류의 대응은 수십만 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원시시대에는 신화와 서사로 상징되는 미토스(mythos)인 부분이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이성과 논리로 대별되는 로고스(logos)적인 부분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생명보험도 유사한 면이 있다. 인간의 생명과 신체를 부보하는 생명보험은 수리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소비자는 보험상품을 선택할 때 보험료와 보장 내용이라는 논리적인 요소를 고려하지만 당시 심리와 인간관계적 요소에도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생명보험상품은 18세기 이미 출시되었지만 이런 복잡성으로 생명보험 관련 교육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대학생을 위한 최초의 생명보험 교과서는 1915년에 이르러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생명보험의 아버지" 또는 "보험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휴브너 박사(Dr. Solomon S. Huebner)이다. 휴브너는 1904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최초로 ‘보험경제학’이라는 보험과목을 개설하고 1913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세계 최초로 보험학과를 만들었다. 휴브너가 1915년 저술한 「생명보험론(Life Insurance)」은 후학에 의하여 거듭 개정되었고 휴브너의 초판 출간으로부터 100년 뒤인 2015년에는 15판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휴브너와 블랙(Huebner & Black)이 공저한 「생명보험론(Life Insurance)」이 1984년 보험연수원(한국보험공사)에 의해 번역되어 최초의 생명보험 교재로 출간되었다. 보험연수원은 그 다음해 「생명보험」이라는 자체 교재를 출간하였으며 이후에도 보험연수원과 생명보험협회는 보험 인재 교육용으로 다양한 생명보험 책을 발행하였다. 1990년대부터 국내 대학에서도 생명보험론 과목이 개설되기 시작하면서 생명보험 교과서 저술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는 생명보험 교과서의 신규 출간 또는 개정판의 출간이 되지 않고 있다.
생명보험 교재의 신간 또는 개정판의 발간이 중단된 시점은 우연히도 우리나라 생명보험업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생명보험산업은 2015년 이후 8년간 네 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데 그 결과 2013년부터 2023년 사이의 연평균성장률은 고작 0.2%에 불과하다. 생명보험 시장이 정체된 이유로, 저출생ㆍ고령화로 가입 수요가 감소한 점, 그리고 1인당 보험가입률이 95%를 넘어서면서 일부 보험 시장이 포화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만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보험상품이 소비자를 매혹할 만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TV가 등장했다고 해서 라디오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사라지지 않듯이, 생명보험에 대한 규제와 상품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생명보험산업은 다시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AI로 대변되는 기술혁명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전환시키고 있다. 정보에 기반한 보험산업은 AI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보험소비자는 보험상품의 탐색, 계약의 체결, 보험금 청구에서 AI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보험회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AI를 업무보조로 활용하는 수준이지만 향후에는 상품개발, 언더라이팅, 모집ㆍ마케팅, 자산운용, 보험금 지급 및 리스크 관리 등 보험업의 모든 부문에서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수요가 변하고 생명보험산업이 급변하는 이 시점에 새로운 생명보험 교재를 소개한다. 「AI 시대 생명ㆍ건강ㆍ연금 보험」은 AI 시대를 맞이하여 생명보험 주요 내용을 가독성 있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세세한 실무 내용이나 사망보험 위주의 상품 소개보다는 생명보험, 건강보험 및 연금보험에 대하여 관심있는 독자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평이하지만 친절하게 저술하고자 하였다. 난이도가 있는 보험계리와 보험법(계약)에 대한 내용도 최대한 쉽게 접근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기존 교재와 차별성을 갖는다. 먼저, 보험산업의 새로운 환경을 고려하여 저술 시 AI의 영향과 효과를 전반적으로 고려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로는 전통적인 생명보험인 사망보험 외에도 장수 시대에 들어와서 소비자 수요가 대폭 증가한 건강보험 및 연금보험에 관한 기술도 균형있게 배분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발간을 지원해주신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에 감사드리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책 출간을 맡아주신 도서출판 시대가치 김광범 대표님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25년 7월
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