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생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1972년부터 1988년까지 장장 16년에 걸쳐 〈세카이〉에 연재됐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TK생이란 필명의 필자가 당시 한국 내부의 비공식 자료들을 토대로 한국의 폭압적 정치상황을 외부에 폭로하는 형식으로 연재한 일종의 기획물이었다.
〈세카이〉 2003년 9월호에는 오까모또 아쓰시 편집장과 지명관 교수의 대담이 실렸다. 이 자리에서 지명관 교수는 “72년 11월부터 88년 3월호까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썼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TK생이란 필명의 실제인물임을 밝혔다.
이 대담에서 지명관 교수는 〈세카이〉의 전폭적인 지원과 일본인 지식인들의 한국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면서 “일본이 한국의 아픔에 그렇게 공감을 가지고 참여한 적이 있었을까, 새삼 놀랍다. 때로는 일반적인 언론이라는 상식을 넘어서 일본의 매체도 한국의 민주화를 열망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오카모토 편집장 역시 한국 민주화운동을 ‘국제적 네트워크를 지닌 전 세계 공동프로젝트’로 평가했다.
2008년, 지명관 교수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출간했다. 지 교수는 이 책을 그동안 〈세카이〉에 기고했던 칼럼을 당시 한국과 일본의 언론 보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책이 출간되자 여러 언론에서 내용을 소개했고, 일반의 반응도 지 교수와 오까모또 편집장의 생각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카이〉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둘러싼 정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세카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연재되었던 시기는 한국에서 경제적 자립과 정치적 민주화란 근대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과 궤적을 같이한다. 물론 이 시기는 한국이 세계역사상 유래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기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카이〉에 포진했던 일본의 진보지식인들은 이런 복합적인 근대화 과정의 한쪽 측면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한국에 대해 유래 없는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의 연재는 이웃나라에 대한 우호적 관심의 차원을 뛰어넘는 내정간섭 수준의 기획이었다. 지식인들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덕목인 ‘사실의 확인’과 ‘실증적 태도’가 결여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자기기만에 가까운 ‘선험적인 인식론’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에서 ‘선험’으로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했던 〈세카이〉의 필자들은 남북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때 최소한 ‘사실’에 근거했어야 마땅했다. 이것은 인접국을 객관적인 하나의 국가로 바라보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세카이〉는 구체적 사실 이전에 ‘반한친북’의 대칭적 남북한관에 고착돼 있었다. ‘북한-선(善)’, ‘남한-악(惡)’이라는 그들의 단순 논리는 실체나 경험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판단이었다.
이와 같은 〈세카이〉의 선험적인 인식론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즉, ‘반한친북’의 대칭적 남북한관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가치판단은 결국 ‘반한친북’이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연관된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의 공과 사에 대한 균형 있는 판단과 평가, 그리고 그를 위한 사실의 확인과 객관적 검증과 같은 일련의 작업은 〈세카이〉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선험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카이〉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 대한 세간의 호의적인 평가 또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선입견과 상응되는 것은 아닐까? 특히, 〈세카이〉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의 연재가 시작된 이후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과의 접합면을 크게 확대했다. 문익환 목사를 비롯해서 이영희, 백낙청, 황석영, 고은처럼 〈세카이〉에 글을 실었거나 대담·포럼 등을 통해 〈세카이〉와 행보를 같이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면면도 대단히 화려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활동이 〈세카이〉의 반한친북이란 선험적 인식론의 알리바이로 이용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허위의식’과 ‘자기기만’의 회로回路
〈세카이〉란 일본 최고의 집단지성이 왜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서만은 이러한 선험적인 선입견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문제제기가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필자는 이런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세카이〉 창간호부터 최신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기사들을 실증적으로 추적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접 자료들을 〈세카이〉의 내용과 교직시키면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파헤쳤다.
결국, 필자는 남북한을 흑백논리로 재단한 〈세카이〉의 편향된 시각이 진보적 지식인의 ‘허위의식’에서 표출된 배리현상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언젠가 허버트 리드Sir Herbert Read경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경고하면서 지적한 바과 같이, 〈세카이〉의 편향된 시각은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감정적 선입감sentimental prejudice”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위선적 태도야말로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자기기만’의 회로回路임을 명철하게 분석한다.
〈세카이〉의 70년, ‘진실’과 ‘상상력’ 그리고 변화
이번 개정증보판은 일본 진보 매체 〈세카이〉가 70여 년간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조명한 글을 새롭게 넣었다. 〈세카이〉는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 초기에는 김일성의 "핵 개발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적극 대변했고, 1990년대 핵 개발이 현실화되자 오히려 미국의 위협, 체제 수호, 협상 카드라는 논리로 북한을 옹호하는 "핵 개발 불가피론"을 전개했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에도 〈세카이〉는 이를 비판하기보다 미국 책임론을 강조하며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다. 와다 하루키, 오카모토 아쓰시 등 주요 필진들은 남한을 폄훼하고 북한을 미화하는 왜곡된 시각을 유지하며 일본 내 친북 담론을 주도했다. 이러한 〈세카이〉의 입장은 한국 사회의 일부 지식 풍토와 정치 문화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세카이〉는 "갱신"을 선언했으나, 과거의 오류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반성이 뒤따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 책은 이러한 〈세카이〉의 노선 변화를 통해 일본 진보 지식인의 이념적 편향과 한계, 그리고 그 파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세카이〉는 창간 초기 ‘진실’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진보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한반도 문제에서는 오히려 북한을 미화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편향된 시각을 유지해왔다. 특히 북한 핵 개발과 인권 문제를 외면하며 진보 본래의 가치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편집장으로 교체되면 ‘변화’를 선언했다. 저자는 〈세카이〉가 진정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진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지진, 그래서 ‘정신적 고투의 공정한 기관’이며 ‘지도적 사상의 본류’를 이끌어가는 권위 있는 종합잡지로 크게 발전할 것을 기대하며 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