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뭔지 물어봐도 돼요?”
공원 벤치, 시각 장애인 유리가 한쪽 눈에 동그란 무언가를 대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곁을 지나던 아이들의 시선이 낯선 물건에 닿네요. 한 여자아이의 엄마는 “쉿, 쳐다보면 안 돼.”라며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지만, 나루 아빠는 빙긋 웃으며 “글쎄, 누나한테 물어볼까?”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낸 나루는 유리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그거 뭔지 물어봐도 돼요?”
유리는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이건 ‘루페’라고 하는 건데, 작은 걸 크게 보여 줘. …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이 루페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지난 기억이 보인단다.” 호기심이 생긴 나루는 루페를 들고 이것저것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아주머니의 속마음, 유리의 기억까지! 나루는 루페를 통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놀라운 경험을 시작합니다.
진짜 이야기에서 시작된 그림책
이야기는 시각 장애인 하가 유코가 실제로 겪은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전철에서 책을 읽던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루페를 신기하게 바라보자 아이의 아빠가 “글쎄, 누나한테 물어볼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은데, 아이가 루페에 호기심을 보이고 스스럼없이 다가온 순간은 무척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해요. 그 아이와의 만남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고픈 ‘비밀스러운 보물"이라고 표현할 만큼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마주하면 때때로 못 본 체하거나 눈길을 돌리곤 합니다. 잘 몰라서, 괜히 기분 상하게 할까 봐, 혹은 다치게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책은 말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다가가 궁금한 점을 솔직하게 물어보라고요. 그렇게 나눈 작은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따뜻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요.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
이 그림책은 또한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는 존재’라는 편견을 부드럽게 깨뜨립니다. 눈이 안 보이는 유리 누나가 길을 잃은 사람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확한 길을 알려주듯, 장애는 단점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봐도 될지 망설였던 사람이 나중에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길 정말 잘했네!”라며 감탄하는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진짜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잘하는 일도 있고 서툰 일도 있죠. 어떤 일은 못하더라도 다른 일엔 뛰어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도 자라나고요. 모두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한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넓고, 재미있고, 따뜻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에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보세요. 그 한 걸음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