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단연 모기도 그렇다. 모기는 인류의 역사와 꾸준히 성실히 벗하며 끊임 없이 인간에게 해를 입혀 왔다. 지금도 말라리아,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등 각종 치명적인 질병을 전염시키며 해마다 72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모기는 더위와 함께 계절이 여름임을 알리는 상징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모기에 인류가 내내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모기를 없애기 위한 여러 모색을 했다. 그러다 박멸에 가깝게 모기를 없앨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은 했는데, 모기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해 다른 생명들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딜레마다. 에피 32호에서 모기를 다룬 원고들은 모두 이 딜레마 위에 서있다. 인간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기도 분명 힘든 사정이 있겠다만 그 사정까지 고려하고 싶진 않지만, 완전 비정하기에는 인간도 함께 힘들어지는 그런 딜레마.
게다가 모기가 생태계에서 나름 기여하는 역할까지 고려하면 모기를 ‘박멸’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귓가를 맴돌며 괴롭히는 모기와의 전투가 달라질 수는 없다. 늘 치르던 전투는 맹렬히 치르되, 전투마다 인간과 모기가 속한 지구 전체가 때론 문득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있어도 문제이고 없애자니 더 문제인 모기, 이 생명체와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에피 32호에 수록된 여러 징후들은 이 질문을 다시 되새긴다. 늘어가는 싱크홀은 무언가를 새로 개발하고 기존에 만든 것들을 유지보수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변화하고 있는 장마의 양상은 우리가 ‘원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원자력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함을 해석하도 다루는 범위를 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