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웠던 과거의 기록이 미래의 ‘불의한 권력’을 막아 주기를!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이유 중 하나로 “독재권력에 의해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불법 계엄 쿠데타 시도는 ‘이제는 사라졌다고 본 불의의 역사’가 44년 만에 재현된 것”이라며 “그 내란이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불의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그나마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를 막아내는 역사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8인의 열사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8인의 열사, 그들이 살아온 1930년대부터 1970년대는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과 분단, 독재와 같은 여러 모순에 허덕이던 시대였다. 1923~1944년에 태어난 열사들은 대부분 해방 전 일제를 경험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민족 통일과 식민지 유산 청산을 위해, 학교 교사로 언론사 기자로 학생으로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사월혁명을 통해 독재와 불의를 일소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젊은 그들은 박정희라는 새로운 독재 권력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갔다. 박정희 정권은 그들을 ‘간첩’으로 몰아갔지만, 열사들 마음 속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꿈이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친일파와 독재자에 따르지 않고 그들의 세상에 저항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정리한다.
시대와 교류하며 시대를 넘어서려 했던 열사들의 기록!
저자는 “이 약전은 ‘혁신계 인명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혁신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통해 열사들의 활발한 활동은 물론이고, 그 당시 혁신계 활동의 큰 그림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1950~1970년대에 활동하던 혁신계 인물 500여 명이 등장한다. 모두 열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그만큼 열사들은 활발하게 ‘시대’와 교류하면서 ‘시대를 넘어서려’ 했다.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던 열사들의 이야기는 1950~197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쓰여진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추천사를 쓴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은 인혁당 8인 열사의 가장 정확한 전기를 씨줄로 삼고 날줄로는 현대 한국 진보운동가들의 형성 계보를 엮어주고 있기에 마치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나 김사량의 『노마만리』의 파란만장한 서사구조를 느끼게도 해준다. 그런가 하면 8인 열사와 함께 했던 빛나는 변혁투쟁사의 성좌를 형성했던 인물들이 열망했던 민족 주체적인 독립국가와 민주사회 실현을 위한 고난의 인생역정들은 마치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나 일제 암흑통치 시기 경성콤그룹의 위기일발 모험을 재연하는 듯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런데다가 5·16쿠데타 세력의 암흑기 아래서 투쟁 노선을 둘러싼 논쟁과 그 진로 모색의 차이가 빚어낸 생사의 운명의 갈림길은 인생론과 역사인식의 경지로 진입하는 진지성을 통하여 변혁투사들이 지녔던 고뇌의 심연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힘과 맞선 시간들!
저자는 2007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이 나온 뒤 2011년 4·9통일평화재단에 사료실장으로 합류하여 ‘인민혁명당과 혁신계의 활동’ 주제로 구술사업을 진행했다. 열사들을 잘 아는 45명을 대상으로 한 구술사업은 2016년까지 총 400여 시간 동안 진행됐다. 저자는 “구술에 응한 분들은 자신이 한 발언 하나 때문에 동료가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여러번 본 분들이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그러나 인혁 열사들을 기리는 4·9재단이 구술사업 주체로 나선 덕분에 많은 관계자들이 신뢰를 가지고 입을 열었다”고 말한다. 폭압적인 독재권력의 악행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기억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게 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인터뷰를 한 분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며 “4·9재단 활동을 통해 그냥 묻힐 수도 있는 역사의 한 단면을 채록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독재권력이 지우고자 했던 열사들의 행적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독재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고문 등을 가한 흔적을 조직적으로 없애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97년 여야 정권교체를 앞두고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내곡동 안전기획부에서는 검은 연기가 수십일 타올랐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수많은 불법기록을 태운 건데요. 8인 열사에 대한 불법행위의 기록도 이때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술사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8인 열사들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열사들의 성장기와 개별적 생각들을 모으면서 사라져가는 열사들의 자료를 소중히 챙겨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에는 8인의 열사들의 삶뿐만 아니라 저자의 인생도 오롯이 담겨있다.
그들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저자는 과거의 진실을 찾아 기록하는 것 외에도 현재 인혁당 관련 생존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에도 주목하고 있다. 저자의 노력은 이 책의 맺음말, ‘국가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2007년 1월 23일 법원이 인혁당 사건의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 배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2013년 2월 25일 국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다. 당시 사건 관련 생존자 국가 손배소송에서 대법원이 사형수 8인에 대한 판결과 달리 ‘장기간 세월의 경과로 인해 이자 상정일을 원 사건의 선고확정일이 아닌 재심 변론 종결일로 정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사용하고 없는 배상금의 일부를 곧바로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반환하지 못한 금액에 대해서는 법정 이자 20퍼센트가 매년 붙었다. 그러던 일이 지난 2022년 법원의 화해 권고조치를 법무부가 받아들이면서 끝난 것으로 세간에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법원의 권고사항은 ‘국가배상금의 이자를 뺀 원금만 받으라’는 것이었다. 화해 권고 판결을 받은 사람은 원금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았고, 화해 권고 판결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금도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1975년 4월 9일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다. 32년간 붙었던 국제적 망신딱지를 완전히 떼지도 못하고, 그 딱지 위에 ‘무죄’라는 글자만 써넣은 것이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사업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다시, 봄은 왔으나 우리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 《다시, 봄은 왔으나》는 어두웠던 과거가 반복되는 혼돈의 현재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불의를 경험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불의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내 대에 반복될 수 있고, 내 후대에서 반복될 수 있다. 이 책을 마감하는 순간에 ‘12 ·3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본 ‘불의의 역사’가 44년만에 같은 일이 재현된 것이다. 다만 그 불의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그나마 존재했기에 내란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의는 재현되었다. 작은 틈도 용서하지 않는 처절한 반성이 우리사회에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