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윤석남이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리기까지
결혼 전에는 홀어머니를 도와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취직했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으로 잠이 오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우울증으로 집에 있는 먹을거리가 다 떨어져야 장을 보러 갈 정도가 되었다.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드로잉과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듯이 어머니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서른아홉에 남편을 잃고, 아이 여섯 명을 데리고 흙벽돌로 집을 지으면서도 한 번도 자식들 앞에서 생계 걱정을 한 적이 없던 어머니. 오히려 장사꾼이 오면 집으로 불러 밥을 먹여 보내거나 집에 재우기도 했던, 마음이 따뜻했던 어머니 원정숙의 이야기였다. 1982년 첫 개인전을 연 후에 10년 동안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업을 끝내고 나서는 〈핑크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의 사업이 번창해서 방이 세 개로 늘어났는데도, 자유로운 유일한 공간은 식탁 앞 의자였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누가 버린 식당 의자를 주웠고, 그 위에 앉은 여자를 나무로 만들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 시대의 여성들과 만
났다. 아울러 〈허난설헌〉을 통해서는 가부장적 사회에 희생당한 과거의 여성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기견 나무 조각인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로 약자를 향한 시선을 이어갔다.
2)한국화라는 새로운 매체로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윤석남이 한국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도전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그림이 이렇게 영혼을 뒤흔들 수 있구나." 하고 깨닫고 한국의 초상화 책을 들여다보다가 또 한 번 깨달았다. 두꺼운 초상화 책에 실린 여성 초상이 단 두 점밖에 없다는 사실, 놀라움에 이어 "여성이 이다지도 사람 대접받지 못했구나." 하는 울분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도 나라가 망할 때 분노하고 목숨 걸고 일제에 대항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렸다.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이 앞으로 나서서 대항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윤석남은 다음과 같은 답을 얻는다.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당당히 찾는 것." 예전부터 윤석남은 "예술이란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라고 언급해 왔다. 여성 독립운동가에게도 나라를 찾는 것은 바로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는 깨달음과 일맥상통한다.
윤석남은 마흔이 다 되어 그림을 시작하면서도 자신의 나이를 의식한 적이 없었다. 마흔 셋에 아르코 미술관(당시 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남들이 "주부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그림을 그리는 데 목숨을 걸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녀에게 나이며 학벌, 세상의 편견이 중요할 리 없었다. 오히려 마흔 살까지 가정에 갇혀서 온도를 높여가고 있었던 내면의 열기가 그림을 시작한지 2년 만에 개인전을 갖고, 그 후 도쿄, 뉴욕, 베이징 등에서 전시를 열며 이 시대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작가로 이끌었다.
3)일곱 통의 편지, 수신인은 열두 명, 주변 약자에 대한 친절함과 다정함
이 책에 실린 편지는 의병노래를 만들고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한 의병장 윤희순에게 보내는 글로 시작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편지의 주인공은 만세운동을 벌인 기생 김향화, 그리고 그녀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 갇힌 권애라, 심명철, 어윤희, 신관빈, 임명애, 유관순이다. 김향화는 수원에서, 권애라, 심명철, 어윤희, 신관빈은 개성에서, 임명애는 파주에서, 유관순은 서울과 천안에서 3, 1 운동에 참여한 죄목으로 8호 감방에 수감되었다(심명철은 시각장애인으로, 임명애는 만삭의 몸으로, 유관순은 미성년자로 참여했다). 네 번째 주인공은 일본인이지만 피지배민의 편에 서서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한 가네코 후미코다. 나머지 편지는 독립운동을 하던 중에 일본 헌병에게 아이를 잃은 이애라, 소설 『상록수』 주인공의 실존인물이자 농촌계몽운동을 하다가 요절한 최용신, 덕성여자대학교의 전신인 근화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 교육에 힘쓴 차미리사에게 보내는 글로 이어진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낮았던 시절에 약자를 돕고 구하려 했다. 천민이라도 집에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 주라고 했던 윤희순, 어머니와 함께 수감된 아기를 위해 젖은 기저귀를 몸에 차서 말려준 유관순, 기생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주도한 김향화, 여성의 의지에 따른 자유연애를 주장한 권애라, 아이들에게도 경어를 썼다던 최용신, 기생과 씨받이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준 차미리사….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약자를 향한 다정함과 공감,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불의에 저항하는 신념과 정의로움은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4)이 책의 제목에 관하여: 작가의 말
“이 얘기는 꼭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이 "모성"의 의미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요. 모성의 뜻을 편협하게 해석하면 오히려 반(反)여성적인 의미가 될 수 있어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모성은 나의 아이 낳고 키우는 그런 범주의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으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의 힘을 복원하고, 사랑하고, 보듬는 힘을 뜻합니다. 모순적인 우주의 삶 자체를 보듬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모성이죠. 다시 말하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 모성은 아이 많이 낳아 키우자, 내 아이한테 희생하자, 그런 뜻의 모성이 아닙니다.” (윤석남)
“윤석남 선생님은 "자식을 사랑하다 보니 주변까지 아우르게 되는 것. 자기의 사랑을 사회로 확장하는 것. 가령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이 모성이다."라며 여성의 "모성"에 주목해왔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사회로 확장한 모성"의 실천자인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견해 화폭에 담은 것도 동일한 연장선이겠지요.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했거나 교육의 기회가 없던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독립"까지도 실현하려던 "운동가"의 삶을 살았다는 걸 떠올리면, 그들의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