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內戰)’이 우려되는 시대, ‘대통령의 자격’을 다시 평가한다
2025년초의 한국 사회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와 새로운 대선을 앞두고 흡사 ‘내전(內戰)’이 우려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 중 큰 부분은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탁상공론’이라 도외시하고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잣대를 기울이며 정치인을 평가해온 풍토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주주의는 1987년 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그간에는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쟁의 일상화’로 점차 정치가 기능부전에 빠져 공동체의 삶을 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의 자격》은 오랫동안 주로 보수정권과 보수정당에 속해서 공직생활을 해온 저자가, 그간 응축해온 실천지와 함께 본인의 독서를 통해 갈고 닦은 이론적 지식을 융합시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통령의 자격’은 무엇일지를 필사적으로 궁구하는 책이다. 이를 위해 1부에선 동서양의 제왕학과 통치이론의 개략이 기술되며, 2부에선 본격적으로 역대 대통령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통치역량’ 혹은 ‘치국경륜’)를 평가한다. 3부에선 그와 같은 탐구의 내용을 통해 얻은 나름의 결론을 서술해준다.
특히 2부의 논의를 보다 보면 현재 우리가 겪는 정치의 양극화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나치게 극단화된 정파적인 이해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혹은 좀더 극단적으로는 전두환까지 세 사람만 공로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산업화세력의 역사비평도 편협하지만, 민주화 이전 대통령들의 역할과 공로를 지나치게 괄시해온 민주화세력 및 진보진영의 역사담론 및 서술도 충분히 중립적이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해산하여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시에 반민특위가 실제로 기소한 이들이 221명, 그리고 김구가 청산대상으로 거론한 거두 친일파가 263명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악질 친일부역자 몇 명이라도 판결대로 극형에 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 진보진영의 생각처럼 해방 이후 우리가 적어도 수천 명의 친일파를 청산했어야 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박정희에 대해 평가할 때도 그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그 자체로 오늘날의 정치에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십의 어떠한 요소들은 충분히 장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또한 민주화 이후 시대의 리더들에 대해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모두 창업에는 성공했지만 수성에는 실패했다고 진단하면서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옛 고전의 명언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동양 제왕학의 논의를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리더들에게 적용한 것으로, 흔히 보기 어려운 독창성과 통찰을 지니고 있다.
저자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평가는 최근의 대통령들을 향할수록 신랄하고 엄정해진다. 이는 꼭 요즘 사람들이 옛 사람들보다 못하다기보다는,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하는데도 이를 감당하는 정치의 역할은 그에 발맞춰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급기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하거나 곧 그렇게 될 대통령들을 서술할 때는 타산지석(他山之石) 위주의 서술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자격》은 ‘누가 해도 저 사람들보다는 낫겠다’면서 필부가 정치인들을 조롱하게 되는 시기에 우리 공동체를 지켜 나가려면 어떤 사람들을 선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이 책은 조롱과 냉소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옛 논의까지 들춰보고 싶은 이들을 위하기 위해 준비된 진득한 노력이 담긴 충실한 만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