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분열과 갈등, 한국 정치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다.
정치적 병리 현상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
저자는 1세대 여성변호사로서,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참여정부 청와대 참여수석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민간위원장, 20대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진보개혁진영의 인사다. 그가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정치와 정부에 대해 본격적인 자기고발서를 썼다.
저자는 〈정치병리학-정치는 왜 애물단지가 되었는가〉에서 ‘정치에 대한 비판은 정확하게 과녁을 맞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치에 대한 비판은 무성하지만, 겉핥기일 뿐, 제대로 된 비판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잘 알려진 국회의 특권에 대해 비판했고, 국민의 비판 덕분에 국회의 특권은 많이 사라졌지만, 정치는 여전히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흔히 패거리정치를 문제 삼지만 정당은 가치와 그룹과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패거리들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고, 정작 문제는 줄서기정치라는 것이다.
또한 싸우지 말라고 정치를 비판하지만, 국민을 위해서 싸운다면 오히려 박수를 칠 것이라며, 작금의 정치는 승자독식 카르텔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문제이고, 그들만의 싸움에서 국민을 위한 경쟁은 일어나지 않고, 싸움꾼들만 모여서 보스에게 줄서기를 하는 조폭문화가 되어버려서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저수지라 불리우는 정치자금을 만들어서 사병역할을 하는 댓글부대를 키우고 여론조작까지 일삼는 행태로 인해 전쟁정치, 저질정치가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박정희가 시작한 여론조작정치가 태극기부대, 일베에 이어서 대깨문, 개딸, 조국기부대 등 저질 팬덤정치로 이어져 정치의 품격과 국격까지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프랙탈이론에 따라서 승자독식의 전쟁정치는 승자독식의 약탈경제로 모방되고 또 승자독식의 권위적인 사회문화로 그대로 복제되면서, 온 나라와 온 국민이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헬조선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불법과 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전쟁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전쟁정치가 계속되면 혁신의 기반이 되는 경쟁의 부재로 인해서 양쪽 모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한다고 경고한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선거제도를 개혁했지만 여야가 비례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무위로 돌아갔으니, 아예 근본적으로 전리품을 없애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역동성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이, 역동성을 헬조선으로 끌어내리는 한심한 지도층에게 전리품을 맡겨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면서, 승자독식 카르텔의 전리품인 예산과 인사와 개발 중 특히 650조의 예산을 ‘힘이 있는’ 곳이 아닌 ‘필요한’ 곳에 배정하는 선진국형 예산으로 바꾸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OECD 최하위 수준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5%의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하고는 중산층 이상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2분위에서 5분위까지의 저소득층과 서민들은 정부 지원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연금과 같이 ‘소득에 따라 차등으로, 그리고 동일한 기준에 따라서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지원’을 확대해서 복지사각지대에 있던 저소득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양극화도 해소되고, 소비도 살아나서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시민사회, 입법, 사법, 행정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서, 팬덤과 극단적 갈등에 빠져있는 한국정치에 대해 정치 본연의 생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대한민국 정치에 대해서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회의 법안 통과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현실정치에 대한 이해를 높여줌과 동시에, 부동산 양극화를 가져온 똘똘한 한 채의 문제, 지역 양극화를 심화시킨 매칭펀드, 교육격차를 초래한 수시확대, 그리고 공공기관의 고임금의 문제를 통계자료들을 제시하여 정확하게 비판하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 말미에 저자는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스스로를 비판하고 힘 있는 세력을 비판하는 용기가 엿보인다. 저자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주축이 되어 합리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시민사회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면서, 팬덤정치와 지역독식에서 자유로운 합리적인 사람들이 승자독식의 전쟁정치를 무너뜨리자는 아래와 같은 소망을 피력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직업과 관계없이, 빈부와 관계없이, 지역과 관계없이, 성별과 관계없이, 나이와 관계없이, 이념과 관계없이 합리적인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합리성을 무기로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함께 힘을 모은다면, 합리적인 선을 넘는 사람들을 제어하고, 공정한 경쟁을 깨뜨리는 사람을 제압하고, 나아가 세계 최악 수준의 양극화를 공공의 영역에서 적절하게 해소하도록 방안을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