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고양이를 둘러싼 세계도 함께 온다는 의미
누워 있는 주인의 얼굴에 엉덩이를 갖다 대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고양이 영상이 조회수 몇백 만을 기록했다. 고양이의 건방진 태도를 문제 삼는 주인의 투정 섞인 말이 재미를 더한 것이 사실이지만, 주인이 투덜대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고양이 편에 선 듯하다. 더 건방지게 굴어도 고양이를 옹호하고 지지할, 아니 오히려 환호할 사람들이 댓글 창을 점령했다. 짐작건대 고양이 편을 드는 사람이 많아서 집사는 흐뭇했을 테다.
반려동물 콘텐츠가 그야말로 넘쳐난다. 그 중심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를 태그로 한 게시글이 특정 SNS에만 3천만 개가 넘는다. 집사들은 열정적으로 개인 사진첩을 풀고. ‘랜선’ 이모와 삼촌들은 아낌없는 애정 공세로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집사의 업데이트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집사는 안면 없는 이들로부터 꾸중을 듣는 일마저 생기는데, 꾸중을 하고 또 듣는 이 어느 한쪽 기분 상하는 일이 없으니 기막힌 현상이다.
SNS의 일상화 덕분에 과거 ‘영물’이란 이름으로 두려운 존재로까지 인식되어 온 고양이가 폭넓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이 알 수 있었던 고양이의 매력,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상에서 보이는 사랑스러움과 엉뚱함과 무심함과 지랄 맞음을 이제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사진과 몇 분짜리 동영상에는 중요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생을 함께함에 따라오는 역할과 책임, 서로에게 익숙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일상의 극한 변화 말이다. 고양이의 언어와 시기에 따른 행동을 익히는 것, 매일 똥오줌을 치우고 어마어마한 털 빠짐을 견디는 것, 사룟값과 병원비 등 고정 지출을 확보하는 것, 노화를 받아들이고 돕는 것, 무엇보다 먼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체질과 환경인지 확인하는 것 등. 사실 집사의 삶을 구성하는 건 이 생략된 이야기들이고, 그것들은 때로 힘겹고 무겁고, 슬프다. 따라서 집사들은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새끼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외모만 보고 누군가 입양을 서두르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로 인해 삶의 지축이 움직인 사람의 이야기며, 편견에 맞서는 이야기인 동시에 질병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p.7)
이은혜 작가는 ‘개과 사람’에서 서서히 ‘고양이과 사람’이 된 과정과 십여 년을 함께한 두 고양이와의 애틋하고 다정한 순간을 기록했다. 길목을 지키고 선 고양이가 무서워 동네를 빙 둘러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에선 웃음이 나고, 고양이의 눈동자에서 이름 모를 행성을 발견한다거나 고양이가 있어 불면의 긴긴밤을 버틸 수 있었다는 고백엔 눈물도 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고양이에 대한 여전한 오해들과 동물학대, 반려동물의 죽음 그 이후까지를 두루 말한다.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깜찍 발랄한 동영상 너머의 이야기를 포함시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반려인들끼리의 연대와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한 존중,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으로 그 시선을 넓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고양이를 둘러싼 세계도 함께 온다는 의미”(p.111)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단순히 고양이의 매력을 드러내기보다 고양이로 연결된 세계를 보여 준다. 결국 고양이를, 누군가를 삶에 들인다는 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란 사실을 일깨우듯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물론이고 귀여운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랜선 이모와 삼촌들, 조만간 고양이 세계를 맞이할 그들에게 이 책을 각별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