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아니 ‘오(5)시렐라’가 된 고모
작가의 조카는 태어나자마자 소아 중환자실로 직행했다. 뱃속 아기에게 산소가 잘 전달되지 못해 뇌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여러 의료용 기기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아이의 고모가 된 작가는 아이를 두어 번 만나고 나니 계속 보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오빠 새언니를 돕는 ‘조카 돌보미’를 자처하게 되었다. “네 인생 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적당히’를 모르는 ‘조카 바보’가 되었다. 작가는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오후 다섯 시까지는 조카에게 간다.
내게 그림은 사랑이자 돌봄의 다른 말
작가는 어느 날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묻는 그림 선생님의 질문에 딱 꼬집어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카를 그리고 싶다’고 답했다. 그렇게 2018년 3월부터 작가는 조카를 돌보며 조카의 일상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림은 조카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행위 그 자체다. 누군가와 조카의 일상을 나누고 싶지만 반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꼈을 때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도화지를 발견했다. 그렇게 수년간 기록한 그림과 글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사이
사람들은 고모가 어떻게 10년 넘게 조카를 돌보고 있냐며 ‘대단한 고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부모가 아니라, 그저 아이가 예뻐서,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고모라서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되묻는다. 결국 조카의 ‘활동보조인’이 되어 돌봄이 경제활동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도 조카 곁에 있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카와 함께 지난한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시간을 들여 조카를 그리며, 그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카를 그리면서 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조카를 돌보며 나를 돌보아 왔다”는 사실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돌봄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행위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