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세상의 모든 도시 중의 하나가 아닐 것이다. 파리는 그곳에 무엇이 있든 그것을 더 아름답게 한다. 《파리를 쓰
다, 페렉》은 이처럼 도시 덕분에 더 아름다워지는 책이 아니다. 반대로 독자에게 더욱 아름다운 파리를 그리고 그와
함께 더욱 풍요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 김명숙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첫 소설 《사물들》(1965)을 통해 독자에게 빛의 도시를 경험하게 한다. 파리를
소개하는 책은 많다. 어떤 책은 여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어떤 책은 인문학적 지식을 전해준다. 《파리를 쓰다, 페
렉》의 방식은 다르다. 독자에게 파리의 지도를 그려 주지도, 인문학적 지식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비교문학자는
특별한 공간이 주는 마법의 경험에 빠져들게 한다.
저자는 ‘도시를 쓰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가로 페렉을 선택했다. 울리포(OuLiPo)라는 유희적 실험 문학의 대표자로
알려진 페렉은 누구보다 새로운 구성과 형식을 고민한 작가이다. 저자 김명숙은 그의 소설 속 결코 나이 들지 않을 주
인공 실비, 제롬과 함께 이 오래된 도시를 산책한다.
이 책은 읽고, 걷고, 사유하고, 쓰는 일이 결국 자연스레 연결되는 동사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카트르파주 가, 무프
타르 골목, 생 제르맹 데프레의 카페 테라스를 따라가는 길에서, 소설의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을 따라가는 여
정 속에서 저자는 그 길모퉁이마다 그저 빠져나가지 않는다. 단어는 사유 속 다른 단어를 만나고, 또 다른 작가를, 그
림과 영화, 음악을 만나 빛의 도시 파리를 더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