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난 30년간 창작자로서, 연구자로서 고뇌해온 산물이다. 아직도 시조 율격론은 일제강점기의 자수율적 파악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는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거푸집[型]에 넣듯 글자 수를 맞추어 써야 한다는 오해가 있다. 정말 글자 수만 맞춰 쓰면 되는가. 도대체 시상(詩想)을 자유롭게 펼칠 수는 있는가. 그러다 보니, 시조(時調)는 있는데 시(詩)는 없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시조란 무엇인가. 나는 박사과정 이후 고시조와 현대시조 텍스트를 바탕으로 율격 연구와 분석에 집중했다. 잠시 성균관대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시조는 다만 글자 수를 맞추어 쓰면 되는 정형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학생들도 고전(古典)이 된 황진이의 「어져 내 일이야」나 이호우의 현대시조 「하(河)」와 같이 자수율에 부합하지 않는 텍스트가 많다는 데서, 시조 율격이 자수율만이 아님을 지적했다. 학생들은 또 자수율적 해석이 들어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시조가 글자 수에 매이지 않고 일상의 말을 담아 유연하게 변주해 나가는 것을 특징으로 삼기 때문이며, 이는 첨가어라는 우리말의 언어학적 구조에 기인한다고 했다. 자수율과 같은 종래 이론은 다양한 개별 작품의 변주를 틀에 담는 데 실패했고, 시조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퍼뜨리는 데 일조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통쾌했다. 시조는 3장의‘ 시노래’였다는 데서 마디와 마디가 만나 동기를 이루고 동기와 동기가 만나 작은악절을 이루듯, 음표(음절=1mora)와 쉼표(장음=1mora, 정음=1mora)가 모여 각 마디의 음량을 채우듯, 눈에 보이는 글자의 음량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음과 정음이 모여 네 마디의 음량을 채운다는 음량률의 실상까지 이해한 학생들이 고마웠다.
이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학생들은 많은 시조가 “왜! ‘3 4 3 4’라는 자수율이 적용되지 않는지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에서 시조의 형식적 유연성을 알아보기보다는 “그냥 외우고 마는 식으로 시조 공부를 마쳤고, 그래서 시조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하이쿠에 비해 그 구성이나 유연함이 월등한 시조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도 찬밥 신세인 것은 장르의 본질을 무시한 시조 교육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비이성적인 시조 교육을 개선하고 대중에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다. 문제는 시조 교육에 있다. 학교 교육도 그렇고 학교 밖의 교육도 시조라는 정형양식이 가진 본질적 이해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시조의 창작자이자 연구자로서 고시조와 현대시조 텍스트를 바탕으로 율격 연구와 분석에 집중해온 홍성란 박사는 이 책에서 시조라는 정형 양식이 가진 본질적 이해에 다시 접근하는 것부터 시조시학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시조가 글자 수에 매이지 않고 일상의 말을 담아 유연하게 변주해 나가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 데 주목했는데, 이는 첨가어라는 우리말의 언어학적 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식미학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우아하게 피어날 수 있었던 현대시조의 100년을 되돌아보고 발전적 미래를 모색한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고시조에서부터 현대시조까지 논의 대상으로 삼으며, 율격론, 개별 작품의 율동 현상이 도출한 ‘자율적 정형시’ 개념, 시조 3장 운용의 해명, 시조의 미학과 창작론, 시조 창작과 번역 문제 등을 다룬다. 2장에서는 현대시조는 100년 역사와 시조 문단을 되돌아보며 시적 탐색이 보여주는 형식실험 양상과 시어 운용에 대한 탐구, 사설시조의 담론화 방식과 서술 특징을 분석했으며, 종장 운용의 문제점과 제언을 서술했다. 3장에서는 한국 대표 시조시인인 조운, 이호우, 정소파, 이태극, 정완영 조오현 등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문학적 형상화를 방해하는 자수율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안내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펴낸 이 책은 유연한 율격 위로 혁신적 상상력이 자유로이 노니는 21세기 새로운 시조시학을 제시한다. 현대시조가 감각을 혁신하는 상상력과 시어 운용으로, 도식성을 벗어난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시로서 독자 대중이 애호하는 한국의 정형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