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술을 노래하고 세상을 노래하다
유사 이래 인간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가장 오래된 벗, 술. 술의 신 두강이 술을 만들 때 사용했다는 세 방울의 피는 문인, 무사, 멍청이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 문인의 피로 인해 술 마시며 시를 짓고, 무사의 피는 호탕하게 술잔을 들이키게 하고, 마지막 멍청이의 피 때문에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술 없는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으랴. 벗과 함께하는 즐거운 술자리, 사랑을 잃고 통곡하며 마신 술자리, 세상에 절망하며 술잔 던지고, 달 바라보며 홀로 마시는 술도 좋다. 또한 사랑하는 이와 함께 교교한 달빛 꽃숲 아래에서라면 금상첨화 아닐까.
도연명, 이백, 두보, 소식, 왕유, 백거이 등이 읊은 주시酒詩 100여 수를 통해 술과 인간이 맺은 그 가지가지의 곡절을 헤아려 본다. 이규보는 “술 없으면 시 짓는 일 멈춰야” 한다고 했고, 왕유는 친구와 작별하며 아쉬운 마음에 “술 한 잔 더 권하”며 술자리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저 강물 변해서 모두 술이 된다면” 좋겠다는 이백이 있는가 하면, “신선이 될 때까지 끊어보리라”며 술을 끊겠다고 다짐하는 도연명이 있다. 우리나라의 걸출한 문인이자 시인인 이색, 이규보, 이인로, 이숭인, 노수신, 박은 등의 시도 함께한다. 삶은 본디 고달픈 것,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잠시 지친 몸 내려놓고, 한잔 술로 여유와 운치와 풍류를 즐기며 삶의 활력과 즐거움을 향유하자고 시인들은 노래한다.
또한 시의 세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시정화의詩情畵意의 맛을 느낄 수 있게끔 시와 그림이 함께한다. 중국 역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마원馬遠, 고굉중顧閔中, 석도石濤, 양해梁楷, 문징명文徵明, 화암華岩, 왕휘王翬 등과 조선의 화가 김홍도와 윤두서의 그림 35점을 함께 수록했다.
술 마시지 못하는 자 시 배울 자격 없다?
열 잔 술에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는 이와 반 잔 술만으로도 흥이 넘쳐나는 이, 두 여성 중문학자가 마음을 모아 중국 인문의 위대한 전통의 하나인 시와 술, 술과 시 이야기를 통해 그 분방하고도 격조 있는 음주의 풍류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주전자 뚜껑에 몰래 따라 마신 막걸리 맛을 잊지 못하다가 중국 고전시를 공부하면서 “술 마시지 못하는 자 시 배울 자격 없다”는 말에 술 마시기에 열성을 보인 적도 있다는 이들 저자들이 ‘술과 시’ 이야기를 시작한 계기는 따로 있다. 중국 하남성 낙양洛陽의 강가를 산책하다가 점심 때 마신 백주가 머리 정수리에서 한 오라기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날아가는 기운을 느끼며 이백과 두보의 시를 술잔 주고받듯 주거니 받거니 할 때였다. 옳거니, 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시인들의 수많은 절창을 우리의 시각으로 다시 노래해보자는 공감의 소산이 이 책을 만들어냈다. 이들 저자들의 ‘술과 시’ 이야기는 세속을 관조하고 자아를 성찰하며, 자신의 삶을 정비하는 쉼표 있는 삶을 이끌어가는 데에 유용한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