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글도 삶을 바라보는 창(窓)이다"
『고양이처럼 출근하기』는 DMZ 접경지역 마을에서 태어나 분단의 아픔을 몸소 겪어온 화가 칡뫼김구의 첫 화문집이다. 작가의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열여섯 편의 작품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로서의 진솔한 고백이자 시대를 마주한 한 인간의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임진강이 보이는 곳에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남북으로 보내는 확성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는 작가는 지금, 그때 들었던 소리를 붓으로 그릴 수밖에 없어 아프다"고 한다. 1956년 접경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의 예술 세계는 이처럼 분단이라는 우리 시대의 상처와 깊이 맞닿아 있다.
"용재 아저씨"에서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은 한 인물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그려낸다. "산이 아름다운 건 뭐든지 품고 보듬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불편한 몸, 부족해 보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품어주며 함께 살던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구절은 우리 시대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화가의 우울증"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고민을 드러낸다. "처음 의도한 이미지와 그려지는 작품의 공통분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겪게 되는 고뇌와 방황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점으로 하는 작업을 즐기는 나로서는 면을 큰 붓으로 발라 질감을 나타내거나 선묘로 쉽게 정리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 녹록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표현하는데 점만 한 것이 없었다"는 고백은 작가의 예술적 신념을 잘 보여준다.
작가의 그림들은 단순히 글의 삽화가 아닌, 또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서 글과 대화한다. "점은 혼자서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지만 서로 연대하면 전깃줄도 되고 벽도 된다. 벽돌 쌓듯 하나하나 축적해야 모습이 나오고 질감도 드러나며 구성 또한 단단해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점묘 기법은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는 독특한 예술적 언어가 되었다.
"장욱진 회고전을 보고"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펼친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현실 상황에서 유리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성찰한다. 이는 작가가 스스로를 "분단작가"로 정체화하고, 분단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근간이 된다.
책의 제목이 된 "고양이처럼 출근하기"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로 이어진다. "새벽 5시, 살그머니 일어나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간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아내를 위한 작은 배려가 담긴 일상의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고양이처럼 출근하기』는 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이 빚어낸 깊이 있는 성찰의 기록이자,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 예술가의 증언이다. 유년의 기억, 예술가로서의 고뇌, 시대에 대한 통찰이 그림과 글로 어우러져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 이 책은,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