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P는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코끼리와 자유로운 나의 삶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생추어리(sanctuary)는 보호구역,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동물권 활동가 진 바우어가 도축장, 공장식 농장에서 구해낸 동물들을 위한 공간을 생추어리라고 명명한 이후 동물들을 위한 안식처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폭력, 착취, 방임, 학대에서 구조된 동물이 여생을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관람’이 아닌 동물의 ‘복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물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구조된 동물에게 평생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에요.
코끼리의 똥 치우기, 식사와 간식 준비, 침대 만들기, 돌 모으기 등은 ENP에서 일주일간 활동하는 자원봉사자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친근한 렉과 대릭에게는 먼저 다가와 인사를 나누며 애정 표현을 하는 코끼리들이에요. 하지만 생추어리 공간인 만큼 자원봉사자들이라 할지라도 코끼리에게 직접 다가가서 하는 활동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는 흔히 이야기하는 동물과의 교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교감은 한 방향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 마음을 들일 때 비로소 생기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눈빛으로 서로를 담을 수 있는 것이기에.
60년 동안 통나무를 나르고 40년 동안 관광객을 태우다 100세가 된 야이부아. 새끼를 유산한 후 일하지 못해 주인의 총을 맞고 앞이 안 보이는 조키아. 그런 조키아의 눈이 되어준 매펌. 이렇듯 ENP에서는 조건 없이 환대받으며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코끼리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이곳에서 지내는 120여 마리의 코끼리 중 일부만을 만나지만, 이름을 알게 되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환대하는 모습을 꿈꾸며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해방을 응원하게 되지요.
ENP에는 코끼리 말고도 개, 고양이, 물소, 염소, 토끼 등 다양한 주민들이 살고 있답니다. 도그 쉘터에는 8백여 마리의 개가, 캣 킹덤에는 무려 2천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살고 있어요. 팬데믹 기간에 코끼리는 물론 구조된 다른 동물의 수도 급증했다고 해요.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는 곳. 뒷다리가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개, 그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코끼리와 물소들은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상대에게 잠깐의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 더욱이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하루 세끼 비건 뷔페로 제공되는 식사도 결코 놓칠 수 없답니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어요.
하지만 땀은 누가 흘려줄 건가요?
이 말이 결정적으로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코끼리의 육체와 영혼을 짓밟는 ‘파잔’을 아시나요? 지능이 높고 사회적인 존재인 코끼리를 길들기 위해 두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어린 코끼리들에게 인간이 가하는 가혹행위인데요. 신체적 학대는 물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게 하고 물과 음식도 며칠이고 주지 않아 코끼리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절반 정도는 살아남지 못하거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됩니다.
혹시 동물을 사랑해서 육식, 축산업, 동물 관광업 등을 하는 사람들이 싫은가요? 그러나 현재의 세상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그것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 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해요. 또한 ENP 설립자인 Lek이 전하는 한 문장, “What is behind the scene?”을 건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 순간 가장 절실한 것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아닐까요?
해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여행을 떠나는 치앙마이에서 멀지 않은 ENP. 칠팔십 대 봉사자 어르신들도 몸으로 하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거뜬히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제 코끼리 타기가 아닌, 코끼리와 공존하기에 동참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이 여러분께 ENP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첫걸음이자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경이로움, 자연의 아름다움,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