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소설의 맹아
1913년 신구서림에서 간행된 《옥중금낭(獄中錦囊)》은 18세기 중반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수경전》을 개화기에 새롭게 개작한 활자본 고전소설이다. 《정수경전》에는 시종 추리의 구조가 관통하고 있어 한국 고전소설사에서 대표적인 추리소설로 꼽힌다. 이 작품이 창작됐으리라 추정되는 연대가 맞다면, 애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보다 1백 년 앞선 우리의 추리소설이 있는 셈이다. 특히 《정수경전》을 개작하며 근대적인 수법을 가미한 《옥중금낭》은 기존 작품에 보이던 추리의 기법이 한층 강화되어 나타나 주목된다.
첫날밤에 신부 죽인 자 누구인고?
과거를 보러 서울에 올라온 장한응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곤경에 처한 맹인 점쟁이를 구해 준다. 맹인 점쟁이는 장한응에게 사례하며 앞날을 점쳐 주는데, 세 가지 액운, 즉 불에 타 죽을 운수와 물에 빠져 죽을 운수, 옥에 갇혀 죽을 운수를 예언한다. 《옥중금낭》은 장한응에게 닥쳐오는 세 가지 액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긴장을 담고 있다. 중심 사건은 옥에 갇혀 죽을 운수와 그 해결 과정이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장한응은 허 의정의 딸 옥화 소저를 신부로 맞이한다. 그러나 신혼 첫날밤, 신부는 장한응이 화장실에 간 사이 칼에 찔려 살해된다. 알리바이를 입증할 길이 없는 장한응은 옥에 갇혀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놓인다.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나면, 범행을 자백할 때가지 갖은 고문을 가하는 것이 고전 시대의 감각이다. 《옥중금낭》은 다르다. 사건이 벌어지자, 가장 먼저 시체를 검시하게 하며, 김 판서를 담당 조사관으로 임명해 공정히 처분하도록 한다. 이 작품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김 판서는 죽은 신부의 계집종이었던 단월이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 하는가 하면, 옥에 갇힌 장한응에게 자신을 변호할 길을 열어 준다. 첫날밤 신부를 죽인 자 누구인가? 《옥중금낭》은 한국 추리소설의 맹아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금낭(錦囊)’, 즉 비단 주머니다. 옥에 갇혀 죽을 위기에 놓이면 쓰일 곳이 있으리라 점쟁이가 내놓았던 물건이다. 비단 주머니 안에 있는 종이쪽지에는 수수께끼처럼 ‘흰 백(白)’ 자 셋이 적혀 있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신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밝혀진다. 현대의 본격적인 추리물과 달리 초월계의 힘을 빌어 사건을 해결하는 《옥중금낭》은, 말하자면 한국 현대 추리소설의 맹아인 동시에 고전서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작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