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명량, 노량…, 조선 해군은 어떻게 강군이 되었나
해전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가능케 한 ‘공직자 이순신’의 뒷받침
첫째, 존경받는 공직자였다.
둘째, 공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셋째, 성실했다.
넷째, 무엇보다 백성을 위해 일했다.
다섯째,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여섯째, 열린 자세와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일곱째, 원칙과 기준에 충실했다.
여덟째, 현장을 중시했다.
아홉째, 소통하는 지도력을 갖추었다.
이순신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반도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영웅인 만큼 이제껏 수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저자 또한 그러한 사료들을 보고 자랐다.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순신을 다뤄왔다. 그런데 새삼스레 다시 이순신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상황하에서 다시 이순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시도는 아니었다. 저자는 스스로가 역사가들 이상으로 사료에 통달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가나 전쟁사가 등 학자가 아닌 공직자의 시선으로 이순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순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고 하는 말을 떠올린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충무공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나오는 말로, 실제 개전 때는 여기에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판옥선 1척이 더해져 13척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의 함선 133척에 비하면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의 전력으로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분전해 완승을 거둔 명량해전은 틀림없이 전쟁사에 길이 남을 해전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통쾌한 승리는 누구나 주목하기 쉬운 스펙타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승전보에 주목하다보면 지휘관, 전략가로서의 면모에만 눈이 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충무공은 결코 자신의 병법과 전술만을 믿고 평상시의 준비를 게을리하는 장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충무공이 명량해전에 고작 13척의 배만을 가지고 싸우게 된 것은 결코 본의가 아니었고, 그 자신의 과오에 의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충무공은 평상시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군비를 충실히 갖추고자 한 지휘관이었다.
충무공은 전선, 병력, 군량 등 모든 방면에 있어서 준비를 철저히 하고자 했다. 저자는 전시가 아닌 그러한 평시의 충무공에게 주목한다. 충무공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공직에 임했을까? 전쟁을 대비하여 무엇을 했을까? 특히 공직자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단 한 명의 영웅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충무공이라고 하는 인물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으나, 거북선 건조를 비롯한 수많은 위업이 그의 독단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을 최대한 살리는 용인술에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저서 『공직자 충무공』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충무공은 그저 위대한 전쟁 영웅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공직자인 동시에 인간 경영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시 이상으로 빛나는 평시의 모습이 있었기에 전쟁에서 그토록 활약할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삶의 태도는 전시가 아닌 현재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에게도 크나큰 울림을 전한다. 저자의 손에 의해서 우리는 430년의 세월을 넘어, 본받아야 마ᄄᆞᆼ한 공직자의 거울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