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가장자리를 두루 발로 디딘 자의 땀자국이
나의 얼굴이기를”
시가 그리는 포물선을 따라
비탄 속으로 걸어 나가는 산책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마음을 순일하게 헤아리는 산문으로 많은 독자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시인 김소연의 새 산문집 『생활체육과 시』가 출간되었다. 머물러 있던 자리의 안간힘 속에서 지켜보았던 아른거리는 삶의 장면들을 시적이고도 명징하게 포착해온 시인은 이번 산문집을 통해 온몸으로 움직이며 나아가는 과정의 원동력을 투시하며 시의 언어와 생활의 이동 경로를 함께 이야기한다. 생활에서 주고받는 공처럼, 시가 그동안 그려온 ‘포물선’을 읽어가는 데에는 ‘걷기’라는 일상의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시인은 이를 통해 삶에 드리운 비탄을 말하고, 시에 도사리고 있던 다양한 진실을 향해 나간다. 총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번 산문집은 장소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으며, 시인이 닿고 싶어 하는 세계의 일면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삼만 보를 걷고 ‘움직이기 신기록 배지’가 축하를 알리던 날, “먼 데로부터 차곡차곡 도착해 온 울분들이 온몸에 꽉 차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래 걸었”라다고 이야기한다.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걷는다는 것이 시간을 횡단하는 삶의 방식이자 동시에 충분히 아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폭력의 언어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던 여성의 언어를 길어 올리며 시인 김혜순부터 박규현까지, 시를 통해 분주히 이동해온 시의 포물선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일에 다가서 있는 독자들은 새로운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만나왔던 생활체육의 크고 작은 운동성에 빗대어 자신이 움직여온 방식을 고백한다. 엄마를 간호했던 병원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물들어가던 독일 뮌헨에서, 이름 모를 묘비공원에서도 여러 장벽을 허물고 ‘걷기’를 통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다른 세계로 도착하는 일”
새로운 자세, 걷기의 문법으로 읽어가는 세계
책 표지에서도 구현되었듯이 ‘시’라는 글자의 물구나무서기, 명랑한 소란이 일 것 같은 운동장의 흑백 풍경은 시인이 그려가는 세계와 닮아 있다. 또한 지난 시리즈와는 달리 시와 산문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실려 있다. 시의 호흡으로 읽어가야 할 때와 산문의 호흡으로 읽어가야 할 때를 구분 짓지 않는 것은 우리가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경사와 커브와 직진 주로처럼 다양한 형태의 길을 하나의 트랙 위로 구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정된 시선과 위치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세계의 변화 속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그리하여 시가 말하는 것들, 시를 통해 말해온 것들에 시선을 놓지 않고 우리 사이에 놓인 포물선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일을 시인은 이번 책을 통해서 붙잡고 있다.
떠남과 돌아옴의 감각은 시인 자체가 하나의 공이 되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던져지며 포물선이 되는 일이다. 언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포물선을 ‘시’라고 명명하는 것처럼, 시인의 숙명은 그 포물선이 너무 평평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 세계의 거짓과 불화하고자 했고 이 방식으로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려 했”(「사랑을 담아」)던 날의 여러 뒤척임과 움직임이, 『생활체육과 시』에 포개어져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온 하나의 자세가 이 자리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