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웃긴 건가 웃기지 않은 건가
고민하는 동안 일단 나는 웃었다, 왜?
어제와 오늘의 표정을 단호히 되묻는 글쓰기 생활자의 기록
선우은실 평론가의 첫 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이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여러 지면에 글을 발표해 온 작가는 작년 그간 써왔던 글을 모아 단단한 물성을 가진 첫 평론집 《시대의 마음》을 펴냈다. ‘생활비평 산문집’을 표방한 이번 책은 성실한 활동을 이어온 비평가의 일일을 기록한 책이자, 예사로운 생활 속에서 느끼는 ‘화’의 감정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비평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작가는 총 세 개의 부를 거쳐 어린 날 아직 언어로 소화되지 않았던 이름 모를 불편과 기쁨을 내밀하게 되짚고, 오늘날 30대, 비혼, 여성, 비평가로서 마주치는 곤경과 곤란을 해석한다. 김금희 작가의 말처럼 “발랄하고 매몰찬 듯 너그러우며 도전적인” 글의 면면에는 ‘알고 싶다’와 ‘모르고 싶다’ 사이에서 서성이며, 약속된 마감을 지키기 위해 고투하는 한 글쓰기 생활자의 흔적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여전히 나를 화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아주 메마르고 건조하며 고갈되어 있다. 합본된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어떤 날의 감정이 아직 과거가 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더는 ‘앎’만의 문제는 아니다. ‘느낌’을 피치 못하게 되었다.
—서문에서
이름 모를 결핍의 출처
매번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데려다줄래, 데리러 올래, 뭔가 같이 할래 물어보는 이 결핍은 어디에서 온 걸까?
—67쪽
‘생활’에 대하여 말하려면 자연히 한집에서 한 시절을 공유한 가족들과의 기억이 소환된다. 늘 “가장 곤란한 문제는 내가 ‘나’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백지 앞에 오래 앉아 떠올린 어린 날의 장면들은 작가가 공부한 이론들을 통해 비로소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해의 시도”를 거듭하는 ‘나’의 결핍은 자주 논리의 영역에서 비껴간다. 작가는 딸인 자신과 맺은 크고 작은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엄마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고 ‘여성의 선택’이며 나는 이러한 믿음을 삶에서 실현하고 싶어서 페미니즘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가 ‘나의 엄마’여서. 엄마의 선택은 ‘나’의 결핍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병환이 깊은 와중에도 늘 채신을 갖추고, 어린 나에게 동전과 지폐를 가득 채운 “담뱃갑 용돈”을 건네던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어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나다울 수 있었다”. 훗날 작가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서슬 퍼런 가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물리고 싶지 않다”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을 펼쳐 보인다.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앎’이 이토록 고단한 것이라면. 가족을 이해해 보기로 시도할수록 ‘증’의 기억을 기어코 건드리고, 7년간 쉬지 않고 활동했음에도 성별이나 출신 대학을 이유로 나의 노고를 쉽게 지우는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마주치고, 쓰면 쓸수록 “내가 아껴온 일이, 마음을 써온 일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 하나 도래하리라 약속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렇다고 생계 혹은 생명이 크게 위태로웠던 적도 없는 무사한 나날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작가는 “못 견딜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모두 함께 하하 웃을 때 혼자만 웃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고 무표정으로 응답하는 데엔 그 자체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웃지 않을 이유를 알게 된 이후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안다.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나와 타인의 존재를 뭉뚱그리지 않고 계속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마음. ‘앎’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애증하는 글쓰기로 보통의 ‘화’를 기록한 그의 문장들 속에서는 정직한 온기와 유머마저 느껴진다. 홀로 된 공간에서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소도구들을 연장 삼아 그는 계속 쓴다. 자다가 내일 눈뜨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오늘만큼만 살아 있기 위하여.
“오직 너만이 가능한 자비를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이 한 문장은 영원히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고통 또한 제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미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미덕 또한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그것을 지녔기에, 타인의 그것 또한 헤아릴 수 있음에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환희,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으로.
—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