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독립운동가, 무엇보다 ‘참된 사람’ 류달영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지나오며 써 내려간 그의 인생 기록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평생 헌신했던 성천 류달영 선생의 20주기를 맞이하여, 1984년 출간했던 그의 수필집 『인생 노우트』를 재출간하였다.
이 책은 「사상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제목 그대로 그의 인생을 담은 노트다. 류달영은 인생 전반에 걸쳐 일제 강점기부터 군사 정권까지 격동의 역사를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글 전반에는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청년 류달영의 고뇌와 결의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어려운 시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아갔던 그의 단단한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나라와 민족, 나아가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그의 인생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 나아갔던 사람, 류달영
류달영은 1911년에 태어나 2004년 향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고 6·25 전쟁을 거쳐 군사 정권까지 한평생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이다. 어린 시절 선비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키웠고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인생의 스승 김교신을 만나 민족의 역사를 배우며 민족정신을 키워나갔다. 그는 책에서 이 시기를 들어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나온 심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다양한 스승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촌 계몽 운동과 여성 교육에 힘쓰게 되었다. 그가 애국지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성서조선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가 한창 교사로 활동했던 시기였다. ‘성서조선 사건’은 김교신을 비롯한 무교회주의자들이 창간한 잡지 「성서조선」에 실린 「조와(개구리를 조상하노라)」라는 글이 민족정신을 일깨웠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을 모두 잡아간 사건이다. 류달영은 김교신, 함석헌 등과 함께 1942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식민지 지배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닥쳐온 전쟁으로 나라가 무너져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재건국민운동 본부장으로 일하며 나라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수습해 전쟁 후 황폐해진 나라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본부장을 사임한 이후에는 남은 생 동안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활동과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닮고 싶은 ‘진짜 어른’ 류달영의 신념을 만날 수 있는 책
시대를 막론하고 올바르게 살기 쉽지 않지만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기 어렵다. 류달영은 살기 어려운 시대에도 자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며 행동으로 보여준 몇 안 되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류달영은 『인생 노우트』의 글들을 ‘정리되지 않은 잡기장 몇 조각’, ‘지극히 평범한 인생 기록’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사상계」에 그의 글이 연재되었을 때 그의 글은 젊은 독자의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류달영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 끝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젊은이들이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변화와 실천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고 정직했던 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엄한 어머니와 자애로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 세상에서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지식한 선비였지만 교육을 위해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고, 어머니의 엄한 가르침은 책에 수록된 ‘대추나무’라는 일화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가르침 아래에 류달영은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유념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 1등에 집착하다가 점수보다 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C군을 만나 점수 경쟁에서 해방되었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알 수 있다. 이날의 경험은 훗날 그의 교육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점수로 학생을 줄 세우는 일은 교육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학생의 교육 의지를 저하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가 살았던 시대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입시와 점수 올리기에만 매몰된 오늘날의 교육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다.
류달영은 이 책의 머리말에 인류의 비극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천대하는 데에서 일어난다고 적었다. 그가 머리말을 썼던 1958년과 2024년은 66년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이 당시에 있었던 문제와 오늘날의 문제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만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오늘날, 자신보다 나라와 민족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해 헌신했던 류달영의 삶이 큰 울림과 부끄러움을 선사할 것이다.
자기 안의 미숙함을 받아들였던 인간 류달영을 만나다
『인생 노우트』에는 류달영의 깊은 사유와 내공이 돋보이는 글도 많지만 그의 서툴고 부족했던 점도 솔직하게 써놓은 글들도 많다. 추위에 떠는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주지 못해서 후회했던 이야기, 무리하게 물 마시기 대회를 했다가 탈이 난 이야기, 커닝하는 여학생을 보고 지난날 자신의 부정행위를 돌아보았다는 이야기, 자기 안의 편견 때문에 타인을 낮춰보았던 일 등의 일화를 통해 그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많은 독자 앞에 자신의 결점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관해 젊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백하듯 적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핑계를 대거나 숨기지 않으려는 그의 정직함도 이바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자신의 결점은 덮고 남의 결점은 비난하기 바쁜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늘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류달영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정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일기와 편지를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을 챙기려고 하는 아들, 남편,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서대문형무소 수감 생활 당시에 어머니, 아내,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스스로의 건강과 안위를 우선으로 하라는 당부와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다정하고 소탈했던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수필은 쓰는 사람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작가의 세계를 읽는 것과 같다. 유대인 여성 교육자 한나 아렌트는 만나보지 못한 유대인 여성 학자 라헬 파른하겐의 저서를 통해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눴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인생 노우트』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감히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