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사는 외동딸이 죄인, 아픈 엄마를 요양원에 두고 왔다
미국 이민 생활 중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젊은 날 홀로되신 후 키워주신 엄마를 혼자 강릉에 계시게 하는 일이었다. 함께 살아보려 엄마를 미국에 초청해보는 등 나름대로 노력도 해 보았지만 여의찮았고, 그나마 엄마가 무릎을 다친 후로는 진통제를 달고 사는 걸 알면서도 전화 통화로 자주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겼다. 어느 날 골절로 인해 가게 된 병원에서 갑작스레 치매 판정을 받고, 아픈 것을 아프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엄마를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된다. 그렇게 미국-강릉을 오가는 간병 생활이 시작된다.
40년을 죽음을 바라본 인생, 죽음에 호상은 없다
중환자실 간호사로 재직하며 수도 없는 죽음을 만나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자주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가족의 상실에 누구보다도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죽음은 그런 그에게도 벅차게 힘든 일이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 판단력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내린 결정은 언제나 최선이라 믿는 것이었지만 속절없는 후회는 고리를 엮어 자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준비하고 맞이한 엄마와의 이별이었지만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크고 깊어 오랜 시간 엄마를 그리며 울었다. 그도 할머니라 불릴 나이이지만, 엄마를 그리는 마음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한 것이었다.
강릉의 푸르고 잔잔한 바다같은, 엄마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엄마의 손을 따뜻이 잡는,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엄마를 추억하며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의 엄마가 겹쳐 보인다. 나의 엄마도 내가 기대고 싶은 만큼 보고 싶은 엄마가 있었을 것이고, 이제는 만나지 못해 이만큼 깊은 슬픔 또한 똑같이 간직하고 있겠구나. 그리고 그 엄마의 모습처럼 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있구나. 그래서 엄마는 바다와 같다. 오늘도 오롯이,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나를 품어주는 바다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