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피로 범벅된 형벌과 고문은 이를 적용했던 사람들의 잔혹함이나 새디즘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보존하려고 하는 사회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형벌의 성격은 형벌을 적용하는 국가의 문화적 가치와 불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의 역작: 형벌론 분야의 현대 고전
어느 분야이든 고전으로 불리는 문헌들이 있다. 고전은 단지 세월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의 길이와 관계없이 지식과 학문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고 독보적인 이정표로서 가치를 지녔기에 고전이라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1940년 출간된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의 저서 “형벌과 사회구조”는 범죄와 형벌을 단순한 법률적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현상으로 바라보는 ‘형행사회학’의 고전이다.
저자인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히하이머는 서문에서, 저자들이 이 책을 저술하던 1930년대 당시에도 범죄와 사회환경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이미 여럿 발표되었으나, 그 동전의 양면인 형벌제도에 대해서는 사회적 조건과의 상호관계를 탐구한 연구가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을 원용해 이전의 범죄학과 형벌이론이 간과하고 있던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통합해 형벌시스템의 변천사와 사회구조의 변동 사이의 관계를 종합적인 조망을 시도했다.
형벌의 형태와 방식은 그 사회의 경제체제에 좌우된다.
저자들은 중세 후기에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는 형벌제도의 변화를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을 이용해 고찰하며 형벌제도가 사회 경제적 조건, 정치 체제, 문화적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변화하며, 특히 사회의 경제적 구조, ‘생산양식’의 역사적 변화가 중세에서 근,현대로의 형벌시스템의 변천에 끼친 영향을 고찰하며 ‘모든 생산제도는 생산관계에 상응하는 형벌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즉, “형벌유형으로서 노예형은 노예제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교도소의 강제노역은 공장제도가 없으면 불가능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화폐경제체제가 없으면 불가능 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를테면 중상주의와 ‘매뉴팩처 수공업’의 시대에 “구빈원과 함께 한 시대를 대표했던 교정원 시설은 중상주의시대 전문 기술자의 노동력이 절실했던 시기에 등장했”으며 따라서 “전문기술자들은 사형이나, 신체형, 유형에 처할 범죄를 저질렀어도 대체로 교정원 생활을 했다”는 것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는 것이다.
범죄와 형벌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선전을 실증으로 반박하다
파시즘 체제하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횡행하던 더 가혹한 처벌이 범죄를 낮춘다는 선전을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 4개국의 범죄율과 실형 비율 등을 비교 분석해 철저하게 반박했다. 게다가 당대의 범죄 및 형행체계의 문제에 사회경제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분석하며, 1939년 당시까지 출간되었던 학술서 중에는 흔치 않게 유럽 주요 국가의 범죄 통계 자료를 직접 입수하여 분석한 실증 연구를 통해, ‘범죄와 형벌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그보다 범죄율의 변화는 경기 및 사회 안정과 관련 있다는 것은 다른 많은 연구에서 증명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의 확대 속에 다양한 갈등과 불화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여러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종종 ‘엄벌주의’ 일변도로만 흐르는 경향이 적잖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가 오로지 경제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다른 정치나 법 또는 이념적인 측면들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