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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얼굴이다

영화는 얼굴이다

  • 박명순
  • |
  • 도서출판등
  • |
  • 2024-08-25 출간
  • |
  • 376페이지
  • |
  • 150 X 220mm
  • |
  • ISBN 979119199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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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작가의 말

관심과 사랑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으나 그만큼 사랑했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오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특정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모두 사랑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스치는 실루엣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읽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좋았을 뿐이다. 그 사람의 연륜과 몸에 새겨진 질곡의 언어를 만나는 순간이 늘 감격스럽다. 사람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처럼 그렇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행이다』(삶창) 출간 이후 6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그 힘으로 영화 이야기를 지금까지 집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영화 에세이를 출간하면서 제목 만들기에 고심을 했다. 그렇게 『영화는 얼굴이다』를 만났다. 낯선 느낌이면서도 안으로 확 안기는 이름이 될 수도 있으며 우리말 ‘얼굴’의 어원인 ‘얼골’도 떠올려 보았다. 영혼을 의미하는 ‘얼’과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이 합친 말이 자연스럽게 ‘얼굴’과 포개진 것이다.
영화를 통하여 새롭게 만난 세상, 삶의 현장 그 모든 것들을 가장 섬세하게 보여주는 건 얼굴(얼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한 편 마다에 담긴 이야기를 얼굴(얼골)로 기억하기를 갈망하였음을 밝힌다. 언젠가 마주했던 아름다운 순간의 표정일 수도 있고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 속의 인연일 수도 있다.


영화를 읽고, 영화와 놀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전혀 격이 다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 관련 식견이 풍부하지는 못하다. 때로는 평범한 관객에 불과하다는 점이 위축될 수도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 전문성을 위해 피땀을 뿌렸던 문학과 달리 영화는 온전하게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여유롭다. 영화가 나를 흡입시킨다는 고백에는 억눌려왔던 욕망의 해방의지가 있다. 그동안 일탈하고 싶었던 ‘또 다른 나’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나를 만날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실패자, 주변 인물 혹은 조연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동일시를 이루곤 하니 그게 ‘나만의 영화 읽기’ 노하우다.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 의지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굳건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운명에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고대 영웅도 사랑하지만, 그보다는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근현대인)을 더 사랑한다. 재주도 없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품격 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또 하나,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다. 여성으로 느꼈던 불평등과 차별을 통하여 인간 평등과 해방 의지를 키우는 힘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관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다만 최초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에 혼자서 늦게까지 TV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드레퓌스』를 만났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과 빅토르 위고에 깊이 감명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설렘으로 두근두근 남아 있다. 그때 영상의 막강한 힘을 처음 체험하였다. 하지만 여고 시절에 단체 관람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닥터 지바고』를 맨숭맨숭하게 보았을 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었다. 다만 마지막 장면, 지바고가 자신의 딸을 찾아서 만나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이었다. 노동자가 된 소냐와 그 남자친구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최근 고전영화를 찾아보면서 고교 시절 생존의 절박함(?)이 놓쳤던 감동의 여유로움을 뒤늦게 음미한다. 영화관이나 영상문화에 낯설었고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고교 시절, 내 친구들은 성냥공장으로, 또는 방직공장이나 버스 안내양으로, 공단의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나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았기에 열심히 뭔가 보답해야 하는 데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자학적인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좋은 영화라고 모두에게 감동과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기반이나 접근성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고교 시절의 나처럼 ‘보아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모든 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니, 내가 영화를 만난 것은 의도적인 노력도 있었다. 글을 쓸 때, 영화를 인용하면 글이 편하고 쉬웠다. 학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 반짝거리는 눈빛이 좋았다. 사람들은 나보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에게 듣는 영화 이야기는 서로의 거리를 정확히 알려 주었지만, 이야기가 오가는 지점의 경계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좋다

나는 음식 자체의 퀼리티가 함께 먹는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서 변한다고 본다. 정작 중요한 건 객관적인 맛의 정의가 아니다. 입안으로 감도는 향과 촉감 그리고 잘게 씹으며 느끼는 식도락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뱃속에서의 섞임과 발효를 통해서 흡수와 동화와 이화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배설의 순환이 완성되기까지 어찌 음식 자체만으로 그 퀼리티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여,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퀼리티를 위한 다양한 만남을 기획하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인생의 목표가 지나치게 뚜렷했다.
유년의 최대목표는 가족이었다. 가난하지 않게 살고 싶었다. 소박하게 표현하면 의식주가 남루하지 않게 살고 싶었던 게 목표의 전부였다. 부모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목숨 걸고 자식 교육에 매진하였고 ‘평범함’ 그 이상의 선망을 알지 못할 만큼 소박했다.
성장하면서 인생의 목표가 확장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빠졌고 대학교 때는 민중과 여성학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래도 역시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상대적 빈곤의 깨달음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거대담론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는 흔들렸다. 나의 결단이 헛소리에 불과했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가족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역설을 온몸으로 긍정했다.
요즘 내 인생의 목표는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하루에 세 끼를 찾아 먹는 것이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일이다. ‘말 다이어트’를 하자고 하루에 세 번 이상 다짐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조금이나마 나를 숨통이 트이게 한다.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작은 방 두 칸에 11명이 살았던 유년 시절의 복작거리는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다니고, 먹고, 결정하는 걸 좋아했다. 혼밥은 일상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런 내가 유독 함께하려고 애쓰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과 영화다. 여러 이유로 동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에게 영화는 만남의 광장이다. 함께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풍요로운 콘텐츠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선정은 책 모임에서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뒤로 물러선다. 보고 싶은 영화는 반드시 혼자라도 보고야 말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모임)이 원하는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한 번으로 만족할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세 번 만나야 폭넓은 감상이 가능하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수십 번 만나야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시를 외울 만큼 읽어야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영화는 시처럼 압축적이면서 ‘비유 상징’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쌍생아처럼 닮았다. 이미지의 메타포를 이해하려면 대사뿐 아니라 음악과 영상기법까지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영화를 ‘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놀이를 소비에서 벗어나 생산의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 역발상이 크다. 대부분의 현대인처럼 나 또한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잠이 많았기에 깨어있는 시간에는 서둘러서 일 분 일 초를 아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효율성에 유독 민감하다. 내가 생각할 때, 영화는 가장 경제적인 문화 콘텐츠이다. 2-3시간 영화에 온몸을 맡기는 순간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만남과 다양한 감정의 흔들림을 나는 고해苦海의 엑기스를 복용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속에서 유독 이끌림이 강한 영화는 특별한 인연이 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거울로서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간다.

일단, 남들이 좋다는 영화를 선택한다

어느 날 예고 없이 확 안겨 오는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 이럴 때면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영화에 매달려 쩔쩔맨다. 더 좋아하는 자가 ‘을’이 되는 것처럼 영화 앞에서 나는 ‘영원한 을’이다. 언젠가 『업』(2009)을 볼 때도 그랬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남자가 모험을 떠나는 장면들이 눈물겹게 아름다웠지만 현실과 영화의 세계에 가로놓인 틈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 틈을 메꾸기 위해 끝없이 그 남자에게 편지를 쓰고 단상 메모를 하고 지인들과 뜬금없이 ‘영화로 수다 떨기’를 반복한다. 이 글은 그러한 시간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마지막 장은 영상시대를 예견한다. 예언은 적중했다. 우리는 불가사리처럼 모든 문화와 예술을 집어삼키는 영상시대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나마 내가 변화하는 세상에 희망을 품는 이유는 적절한 무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의 종말에 N분의 1만 책임질 것이며 절대로 완전체가 될 수 없는 역사와 사회 인류가 지닌 불완전함과 불합리와 모순에 절망 대신 수용을 작정한 바 있다. 나는 N분의 1로서 당당하게 세상과 만나면서 죽을 때까지 나를 숙성시키고 싶다. 나의 관심은 세상과 인류에 대한 것보다 나의 변화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나 역시 ‘생로병사’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절망과 비애에 침몰하지 않고 따스함과 생기(生起)를 품어내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천성이기도 하다. 다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서 나에게 공부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부드럽게 위로하는 영화도 좋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처럼 불편한 영화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영화도 사람처럼 궁합이 맞아야 하고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도 있다. 몸이 힘들 때 무리해서 영화를 억지로 보는 건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존 적이 몇 번 있는데 절대 영화 때문이 아니다. 내 몸이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영화관을 찾는 시간은 기진맥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흑흑 흐르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니면 무시무시한 공포와 스릴러도 좋아하는 히치콕의 광팬이다. 흑백영화 『사이코』가 나를 사로잡으면서 내장에 화인火印을 새겨 넣었다. 예술영화나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꼭 챙겨본다. 한마디로 말해 순수한 취향 없이 마구잡이 스타일이다. 그런데 지인들은 나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 눈물은 거의 말라붙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피가 흐르는 장면이 스치기만 해도 악몽을 꾸는 남편, 나의 여동생은 무서운 영화를 볼 때마다 극장에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함께, 그리고 다르게-나만의 영화 읽기

오랜 세월 공부하는 시간을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책을 들고 있으면 지청구를 했었고 운동권 선후배들이 현장에 몸을 투신할 때는 공부 자체가 신선놀음 같아서 죄책감을 동반했다.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이나 먹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가족과의 대화나 직장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도 최소화하면서 가슴 한구석은 죄인처럼 외로웠다.
책을 끼고 사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겼던 내가 어떻게 영화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전교조나 여성단체에서 추진했던 영화 관람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시로 영화관을 출입하는 나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공부하는 것까지는 봐주던 남편까지 영화는 늦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외면했다. 그래서 핑계를 만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하는 거라고.
‘영화로 수다 떨기’를 하며 만난 모든 사람들이 스승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다르다. 고백하건대, 나는 영화에 있어서 왕초보자이다. 그러함에도 당당할 수 있는 건 영화에 대한 나만의 사랑이 지극정성이라는 점이다. 초보자만이 지닌 풋풋함이 있다고 남몰래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첫사랑은 왕초보자의 사랑이기에 지극한 것이 아니가.
62편의 글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가족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모두 담았다.*

글쓰기의 공간을 마련해준 〈토지문화관〉과 〈연희문학창작촌〉 그리고 담양의 〈글을 낳는집〉에서의 시간과 진도의 〈시에그린〉 등 아름다운 배경에서의 깊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영화는 여행이다』(삶창, 2018)의 프롤로그 내용 일부를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목차

서문 004

1부 우리는 가족

02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좋은 아버지라고 착각하는 젊은 아버지를 위하여

026 『토이 스토리4』 Toy Story 4
아들·딸과 함께 나누는 동심

031 『행복 목욕탕』 her Love Boils Bathwater
목욕탕에서 만나는 행복의 의미

036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ツレがうつになりまして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041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045 『미나리』
가족이 함께 보면 더 좋은

052 『이장 (移葬)』
괜찮다, 괜찮다

057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
곰이 산을 넘어요


2부 가족의 얼굴

062 『인어공주』
부모의 스무 살 꿈과 사랑 그 풋풋함으로

066 『가족의 죄』 Crimenes de familia
세 명의 여인이 한 명의 남자로 인해 당하는 고통

072 『중앙역』 Central do Brasil
둘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 끝 먼 길에 도달한다

077 『고령화 가족』
콩가루 집안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속정

083 『말임 씨를 부탁해』
돌봄의 의미

089 『장수상회』
삶과 죽음의 시간, 우리는

3부 가족이지만 불편한

096 『우리집』
아주 가끔 화목한 ‘우리집’입니다만

102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
‘판’이라 불리는 상상력의 괴력자

107 『죽여주는 여자』
노인의 성과 죽음으로 사유하는 영상

111 『꾸뻬씨의 행복 여행』
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행복은 능력이고 권리이며 의무라는

116 『당갈』 Dangal, wrestling competition
절박한 꿈은 시대적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는 무기
120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의 존엄을 설득력있게 그려낸 영화

124 『마틸다』 Matilda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4부 가족과 나

130 『기생충』
제목의 의미를 곱씹으며 보는 영화

139 『샬롯의 거미줄』 Charlotte’s Web
기적은 동물들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마음

143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택배 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영화

149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인간적 존중을 요구한다

154 『돈 룩 업』 Don’t Look Up
6개월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159 『벌새』
그 날갯짓을 응원한다

168 『세 여자』
내 안 폭력의 역사를 묻는다

178 『써니』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183 『쉘 위 댄스』 Shall we ダンス(Dance)?
인생도 사교춤과 마찬가지이다

5부 영화는 타인의 얼굴이다

188 『스윙 키즈』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탭댄스의 기묘한 만남

193 『조이』 Joy
조이, 보통사람이 영웅인 시대를 꿈꾸며

197 『로마』 Roma
1970년대의 표정은 다층적이다

203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가난한 예술가의 삶은 어떤 것일까?

207 『탬플 그랜딘』 Temple Grandin
결함 그 자체가 나라고 인정하며

211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가능한가?

218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집사의 품위와 인간의 품위

225 『카운트』
이게 은메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32 『디 아워스』 The Hours
책과 영화와 버지니아 울프가 만나면?

236 『눈 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눈 먼 자들의 도시’와 코로나 팬데믹 사회

241 『비커밍 아스트리드』 Becoming Astrid
가장 힘쎈 아이 삐삐를 탄생시킨 ‘아스트리드’

245 『만다라』
만다라를 만나는 시간

6부

252 『자산(玆山)어보』
죽은 검은 색 흑산(黑山)에서 살아있는 검은 색으로

257 『서편제』
‘한’의 재해석을 위하여

262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The Breadwinner
남장을 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파르바나

267 『생일』
애기똥풀과 세월호 리본

276 『김복동』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아시나요?

280 『타인의 삶』 Other Life
영화는 여행이다

284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때로는 불편한 영화도 좋다

291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이란 여성의 자존감을 응원한다

295 『1987』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301 『실미도』
주체의 전멸, 타자 담론의 지옥도

7부

310 『헤어질 결심』
영화로 만나는 영원한 미결사건

323 『세 번째 살인』 三度目の殺人
영화에서 ‘살인’은 발칙한 상상력이다

328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예술의 세계가 지닌 빛과 그림자

334 『튤립 피버』 Tulip Feve r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

341 『어른 김장하』
돈은 모아두면 똥이 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348 『다음 소희』
영화로 만나는 또 다른 얼굴

355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때가 내 삶의 하이라이트였어

359 『피로스마니』 Pirosmani
백만송이 장미의 주인공 조지아 국민화가

363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영화가 좋다, 만만(漫漫)해서 좋다

368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육체언어로 새겨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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