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울대가 계열별로 입학생을 모집하던 시절에 인문계열로 입학하여 1년을 인문대 학생으로 지낸 뒤 2년 차에 언어학과로 진입했다. 언어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들어간 것도 아닌 학부생으로서는 학과에서 제공하는 여러 전공 교과목의 수강은 지루하게 느껴졌으며, 따라서 무슨 의미 있는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였는데, 다만 그때 공부한 내용 중에 필자를 의아하게 만든 게 한 가지 있긴 했었다. 그것은 자연 언어의 문장은 문법 규칙에 의해 “생성된 구조”에 어휘적 단어나 문법적인 요소가 삽입되어 만들어지고, 특히 모든 문장은 주어인 명사구와 술어인 동사구로 이루어진다(즉, “S → NP VP”)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접한 뒤 한국어 모국어 화자인 젊은 필자에 든 생각은 ‘내가 정말 이러한 문법 규칙을 가지고 문장을 만드나?’, ‘나한테 이런 문법이 머릿속에 있나?’라는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필자로서는 말을 할 때 이러한 통사 규칙에 의거해 생성된 구조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어휘소 등을 집어넣어 말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의문은 최초에는 강렬하긴 했지만, 지속되지 않고 곧 사그러 든 것 같다. 그에 대한 해법을 찾을 정도의 학문적 열정이 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공부를 안 해 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면서 의구심을 접었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사그러진 의구심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필자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대 후에 우연히 러시아어를 공부하게 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조교로 재직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언어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어의 선어말어미(안맺음씨끝) 의미론을 주제로 하여 석사학위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 뒤 미국 UCLA의 슬라브어문학과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도, 한국어 화자로서 필자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늘 지속되고 있었다. 러시아어는 형태론적 굴절(inflection)이 발달한 언어의 하나임은 주지의 사실인데, 러시아어 굴절이 가지는 특성은 한국어의 “조사”나 “어미”가 체언이나 용언에 출현하는 현상이 보이는 특성과 여러모로 다르다는 생각이 필자에게 들었던 것이다. 가령, 러시아어 체언에는 항상 수(number)와 격(case)이 접사화되어 출현해야 하는데, 필자로서는 체언이 지시하는 개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를 왜 항상 표현하고, 개체가 보이는 여러 특성 중에 왜 하필 ‘수’인지도 의문이 생겼다. 또한 굴절 어미(ending)가 음성적으로 출현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자리에 ‘수’와 ‘격’의 자질은 구현되어 있다고 기술하는 것, 즉 ‘영 형태(zero morph)’의 존재도 필자로서는 새롭게 보이는 현상이었다. 한국어의 경우에도 조사가 출현하지 않은 체언이 가능한데, 한국어 문법론에서는 영 형태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한국어 화자인 필자에게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학위 취득 후 필자는 충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현 러시아언어문화학과)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러시아어 관련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도 하면서 러시아어학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경력을 쌓아갔다. 러시아학 관련한 여러 학회에서 논문도 발표하고, 학술지 편집 관련 일도 하고, 학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필자가 동료 학자인 같은 대학 국문학과 강창석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러시아어학 전공자인 필자가 국어학자인 강 교수와 학문적인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필자의 내면에 잠재화되어 있었던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발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 교수는 한국어를 어떤 특정 이론적 시각에서 연역적으로 기술하는 연구 태도를 배척하고, 경험적인 한국어 자료를 중심으로 귀납적으로 한국어 문법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 학자이다. 이러한 강 교수의 학문적 접근 태도에 필자도 수긍하면서, 한국어 문법을 새롭게 볼 필요성이 있음을 필자도 자각하게 되었다. 한국어 대화체에서 목격되는 “생략” 현상은 새롭게 “부가”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생각은 언어학과 학부 시절의 의구심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한국어 “조사”나 “어미”는 인구어적인 굴절 현상으로 기술될 수 없으며, 이들의 출현은 형태론적 현상이 아니라 통사론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어 문법에 ‘영형태’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자각을 구체화했다. 특히 한국어는 본질적으로 문법적으로 규정되어 존재하는 형식(型式, frame)의 구조(틀)에 맞추어 문장을 생성해 가는 언어가 아님을 밝히고자 하였다. 영어나 러시아와 같은 인구어는 서술이라는 관계 개념에 의해 형식적 틀이 규정되며, 따라서 문장은 이 틀에 맞추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영어 문장의 통사 분석은 무엇이 주어이고, 무엇이 서술어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어를 어떤 식으로 정의 내리는가는 문법 이론마다 다를 수 있지만, 문장이 서술의 원리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은 모든 이론이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서술을 모든 자연 언어의 보편적 특성으로 간주하여 한국어에도 서술을 적용하여 문장 통사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한국어 문법론의 표준화된 기술 방식이었다. 필자는 이 책에서 한국어는 서술의 원리로 형식화되어 있지도 않거니와, 어떤 특정의 형식을 준거로 삼아 문장이 형성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필자가 학부 시절 품었던 의구심, 한국어도 영어에서와 같은 문장 형성하는 구절구조규칙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셈이다. 나아가 필자는 “조사”와 “어미”의 출현은 문법적 규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통의 필요에 의한 것이고, 따라서 이들은 문법적으로 필수 요소가 아니라 소통적으로 첨부되는 요소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러시아어를 공부한 필자에게 한국어에 대한 논저를 집필하는 것은 늘 부담이 되었다. 주제 의식은 비교적 명확했고 논지 전개와 결론 도출 역시 나름 논리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었지만, 해당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업적들, 특히 연구사적으로 의미 있는 업적들에 대한 독서가 선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다. 해당 주제에 대해 이미 충분한 논저가 존재함에도 필자의 연구 여력이나 능력의 부족으로 언급되지 못한 부분이 본서에서도 여럿 발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독자의 질책을 미리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학문적 여정에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과 선후배 동료 학형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다. 먼저 서울대 언어학과 고 허웅 선생님과 고 성백인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허웅 선생님의 고매한 학문과 성백인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필자가 먼발치에서라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UCLA 슬라브어문학과의 대학원 시절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헤닝 앤더슨(Henning Andersen)은 필자를 말 그대로 ‘러시아어학자’로 만들어주신 분이다. 학은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전해도 부족할 따름이다. 필자와 더불어 한국어의 여러 현상에 대해 수많은 토론과 대화를 나눈 두 분 교수님, 충북대의 강창석 교수님, 서울시립대의 목정수 교수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강 교수님은 필자에게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혜안을 촉발해 주셨고, 목 교수님은 한국어 문법에 관련한 여러 창의적 견해를 필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필자는 본서를 사랑하는 아내 전혜경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