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죽다 살아나니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죽겠다’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배가 고파서 죽겠고, 심심해도 죽겠단다. 짜증이 나도 죽겠고, 힘들어서 죽겠다고 한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살아가곤 한다. 가깝고도 먼 죽음이라는 존재. 그 죽음과 정면으로 얼굴을 맞이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세 번이나.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먼 존재가 아니다.
나의 죽음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암 환자가 흔하디흔한 시대라지만 나의 이야기가 되면 달라진다. 아직 개발된 약도없는 신생악성종양에 걸려 차라리 죽기보다 더 힘들었던 항암과 방사선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죽겠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힘들게 하려고 모든 주변 정리를 마쳤다. 아끼던 옷도, 몇십 년간 써오던 일기도 모두 버렸다. 혹시라도 나의 흔적이 가족들에게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버리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저는 암 환자가 아니라 암 경험자입니다!’를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죽음과 삶은 겨우 1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겨우 1도의 각도만 어긋나도 아예 다른 곳으로날아가 버리고 마는 로켓처럼, 단 1도만 ‘살아야겠다’로 마음을 바꿨을 뿐인데 내 몸은 거짓처럼 죽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삶을 향해 흐르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그런 경험을 했었다. 2014년 부산 기장 좌천에 물폭탄이 쏟아지던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자동차 하나쯤은 여리디여린 꽃잎처럼 제 맘대로 다루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기적처럼 살아났다. 거센 물살에 정신없이 휩쓸려 가면서도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고, 메고 있던 가방을 나무에 단단히 묶으며 의지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우리 딸 결혼해서 산후조리할 수있을 때까지만 살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함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연약한가.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은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해서 지켜낸 목숨인데, 나는스스로 그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서 뭐해! 깨끗하게 살다 가야지!’ 49대 51이었을 거다. 살고 싶은 마음보다 죽고 싶다는 마음쪽으로 겨우 1도만큼 기울었을 뿐이고 그렇게 나는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 그런데 살았다. 그래놓고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하나, 암 환자라니. 기막혀서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의지만 있다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삶이란 이렇게나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세 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내게 지금은 그 힘든 날들이 모두 영양분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 시절을 잘 견디어 온날들은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기도 하다. 어느새 암 환자에서 암경험자라는 말을 하고,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던 그날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 2막의 삶을 살고 있다. 꿈이었던 시인이 되었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간이 되고 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나온 나의 힘들고 아픈 시절도 돌아보니 참 아름다웠구나!’라고 말이다.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있다. 그렇기에 ‘삶이 불행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만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일의 내가 살아가는 밑거름이고 성장통이라는 게 보일 때가 반드시 있다. 언제이건 우린 우리 자체로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은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
고, 그 순간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빛나고 행복한 시간들 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손녀의 탄생이 나를 살아가도록 희망을 주었듯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나의 글이 아름다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새로운 삶의 꽃이 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